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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씨 블로그엔 '나는 순례자이며 여행하는 영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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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의료 자원봉사단체 '월드와이드 서비스'소속으로 예멘에서 봉사활동을 벌이다 테러단체에 납치돼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 엄모(여·34)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저는 순례자(pilgrim)이며 여행하는 영혼(traveling soul)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블로그에는 자신의 예멘 생활이 자세하게 기록돼있다. 지난 1월 23일자로 작성된 이 글은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향해 작성한 영문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엄씨는 "지난 10월 예멘에 와서 지금까지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며 "○○○라는 귀여운 (한국) 아이를 즐겁게 가르치고 있으며, 한 집에 살고 있는 네덜란드 동료와도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썼다. 자신이 트럭에 올라탄 사진과 한 남자 아이와 나란히 포즈를 취한 사진도 함께 올렸다.

그는 자신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관련해 "우리 팀은 한국·네덜란드·독일 사람으로 구성돼있고 아주 끈끈하다"며 "지난 12월 (팀원들이) 깜짝 생일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해줘서 우리 팀이 나를 무척 사랑해준다고 느꼈다"고 썼다.

앞으로의 계획도 언급했다. 그는 "예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아랍어를 배우고 있다"며 "8월 말까지 귀국했다가 올해 말쯤 터키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63)와 여동생(31)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했다.

그는 예멘의 치안에 대해 불안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엄씨는 "한달에 1~2건씩 외국인 납치 사건이 일어난다"며 "(자신이 일하는 지역인 사다에서) 예멘의 수도 사나로 이동할 때는 하나님의 보호를 청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집단 납치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납치된 이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글을 적었다.

엄씨는 피랍 4일째인 15일 밤 테러단체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늦게 외신을 통해 엄씨와 함께 납치된 독일·영국 출신 자원봉사자들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원 권선구 엄씨의 자택에 취재진이 몰려들었으나 그의 가족은 아파트 현관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엄씨의 가족은 1년쯤 전부터 이 아파트에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4일 엄씨의 아버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며칠 전 딸(엄씨)이 예멘에서 전화를 걸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며 가족들 안부를 물었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그는 "정부 당국이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했었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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