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위기극복대책에서 빠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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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통령이 주관하는 경제조정대책회의에 보고된 한국개발연구원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촉진방안과 중기비전' 은 지난해 11월 외환위기 발생후 지금까지 나온 어떤 보고서보다 침착하고 구체적으로 현실을 분석했다.

경제위기가 앞으로 지금보다 더 심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특히 강조하고 이를 방지하려면 정부가 선도해 금융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조기에, 그리고 신속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대량실업이 불가피하다고 지적, 실업자 지원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대책 패키지의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에는 알맹이 부분이 빠져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금융구조조정과 사회안전망 구축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언급하고도 재정이 지원할 금액의 크기를 대강이라도 적시 (摘示) 하지 않은 것이 그것이다. 만일 이 금액이 수조원 범위 안에 있다면 혹 남겨놓고 다른 내용을 주로 다루는 것도 무방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만일 금액이 수십조원이나 그 이상이라면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은 그 자체보다 거기에 드는 예산 마련이 더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책의 핵심은 구조조정 사업에서 예산확보로 옮아간다.

이 보고서는 3개년 계획으로 구상돼 있다. 98년은 구조조정, 99년은 위기극복, 2000년은 재도약으로 시간표를 짰다.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만일 구조조정에 드는 돈이 엄청난 것이어서 그것을 조달하지 못하는 바람에 98년에 구조조정을 끝내지 못하고 그 다음 해, 또 그 다음 해로 연기된다면 이 3개년 계획은 송두리째 시간표가 틀어지고 만다.

하나의 프로젝트 설계가 의미있는 것이 되려면 그 프로젝트의 가장 '힘든 작업 (critical path)' 부터 명확하게 정의하고 규명하는 것을 그 설계의 핵심작업으로 삼아야 한다.한국개발연구원은 이 점을 빨리 보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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