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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감각이 재산인 그녀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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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04면

2 김씨는 ‘인형 할머니’로도 통한다. 인형을 모아 『톰소여의 모험』『피노키오』『소공녀』등 동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것도그의 즐거운 취미다. 김씨가 아끼는 인형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입고 있는 옷은 새댁 시절 김씨가 직접 뜬 원피스. 당시 두 돌이었던 딸과 ‘커플룩’으로 입었던 옷이다. 딸이 입었던 옷을 이번엔 인형에 입히고 사진을 찍었다.

주부도 프로인 시대다. 살림 솜씨 하나로 부러움도 사고, 존경도 받고, 돈도 번다. 이른바 ‘한국판 타샤 튜더’ ‘한국판 마사 스튜어트’의 등장이다. 밥 해먹고, 애 키우고, 집 꾸미는 노하우가 이들의 자산이다. 이들 살림꾼 주부들이 ‘전국구 스타’로 등극한 데는 블로그나 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의 역할이 컸다. 대표적 사례가 인터넷 카페 ‘레몬테라스’를 운영하는 주부 황혜경(36)씨. 집 예쁘게 꾸미는 솜씨로 유명인사가 됐다. 그가 만든 ‘레몬테라스’는 회원 수 90만 명이 넘는 파워 블로그로 자리매김했고, 2006년 출간한 『5만원 인테리어』는 10만 권 이상 팔렸다. 『쌍둥이 키우면서 밥 해먹기』『12분 만에 뚝딱! 우리아이 튼튼밥상』 등의 저자 문성실(34)씨도 요리 블로그 ‘둥이맘’을 통해 영향력을 키운 주부다.

이런 프로 주부들의 부상은 평범한 주부들의 자긍심도 높였다. 더 이상 살림이 아무나 하는 일, 아무도 안 알아주는 일이 아니란 게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진작부터 했던 ‘선각자’가 있었다. 바로 동화작가 김향이(57)씨다. 느낌표 선정도서 『달님은 알지요』를 비롯해 스테디셀러 『내 이름은 나답게』 『나답게와 나고은』 등의 저자인 김씨는 “내 동화는 아이 열심히 키우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1남1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다가 작가의 길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강연 자리에 서면 늘 “주부의 역할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아느냐”부터 강조한다는 김씨. 원조 살림꾼으로 알려진 그의 집을 직접 찾아 그 말의 속뜻을 짚어보기로 했다.

아기옷 만들던 실력 인형으로 꽃펴
김씨의 집에서 ‘기성품 그대로’를 찾기는 어려웠다. 모두 그의 손길을 거친 새옷을 입고 있었다. ‘나만의 명품’을 만들어 쓰겠다는 그는 소신에 따른 결과다. 그는 옷장과 서랍장ㆍ의자 등도 일일이 리폼해 쓴다. 페인트칠과 사포질이 일상이 된 김씨. 고운 얼굴과 달리 손은 퍽 험했다.옷걸이 하나하나도 그의 재창작품이다.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날 주워온 나무 옷걸이에 연분홍색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장미꽃을 그려넣었다. 식탁 의자 커버도 직접 만들어 씌웠다. 신문지로 본을 뜨고,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산 천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상가에서 산 코사지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1 꽃을 좋아하는 김향이씨는 테이블 세팅을 할 때도 꽃을 십분활용한다. 집 부근 산책길에서 클로버꽃·씀바귀꽃·병꽃 등을 꺾어 와 장식했다. 연어 샐러드 가운데 꽃 장식은 키위 껍질을 말아만든 것이다.4 홈메이드 커버를 씌운 식탁의자. 김씨는 “본을 떠 수선집에 맡기려고 했다가 수공이 개당 1만9000원이라는 말에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옷 만들기도 그의 특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같은 천으로 온 가족이 함께 ‘패밀리룩’을 만들어 입곤 했다. 그 덕에 잃어버린 아이를 찾은 적도 있다. 큰아들이 서너 살쯤 됐을 때였던가.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서 아이가 없어졌다. 정신없이 찾아 헤매는데 한 상인이 “아줌마, 똑같은 옷 입은 애가 저기 있던데”라고 얘기해 줬단다.
동화작가가 되기 전 그는 살림 솜씨로 이름을 날렸다. 아가방 주최 아가옷 공모전에서 당선되기도 했고, KBS-TV ‘맛자랑 멋자랑’ ‘엄마의 방’ ‘으뜸주부를 찾습니다’ 등을 통해 방송도 탔다. 또 ‘우먼센스’ ‘엄마랑 아가랑’ 등의 잡지에서 살림·육아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으니 이미 유명인사였던 셈이다.

3 육아일기 ‘꿈나무’와 ‘꽃잎’. 글과 사진·그림 등을 골고루 이용해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을 기록했다.

그의 손재주는 인형에서 꽃이 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동화책 속 주인공을 인형으로 만들어 놀았다. 음료수 깡통에 끼워 쓰는 부직포 인형, 장갑처럼 손에 끼는 손인형, 손가락마다 끼울 수 있는 손가락 인형 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 인형들로 아이들과 함께 동화 인형극을 하며 놀았다. 인형은 곧 그의 온전한 취미가 됐다. 현재 그는 1000여 개의 인형과 함께 산다. 하나하나 이야기가 있는 인형들이다. 골동품 인형을 경매로 구입한 뒤 부러진 발가락을 점토로 만들어 붙이고, 아크릴 페인트를 칠해 뽀얀 살색을 내고, 옷을 새로 지어 입히기도 했다. 또 인형들을 모아 『소공녀』『강아지똥』『피노키오』『초원의 집』 등의 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의 최신작『꿈꾸는 인형의 집』은 바로 그 인형들의 사연을 담은 동화책이다.

5 부직포로 만든 동화 주인공 인형. 빈 병에 씌워 세워 두고 인형극을 하곤 했다.

그는 먹거리도 예쁘게, 예쁘게 가꾼다. “그냥 먹는 음식도 조금만 신경쓰면 보는 눈도 즐겁고 더 맛있게 느껴지지 않느냐”며 과일 한쪽도 예쁘게 먹자는 주의다. 기자가 찾아간 날 내놓은 다과도 눈의 호사였다. 색색의 팬지꽃을 얹은 화전에다, 키위 껍질을 말아 만든 장미꽃 모양의 장식 등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김씨는 병원 병실에서도 은식기를 썼던 사람이다. 남편(2006년 작고)이 암 투병을 하고 있었을 때 얘기다. 집에서 가져간 예쁜 그릇에 과일을 담아 “황제마마 드시와요” 했단다. 자칫 무거워질 법한 병실 분위기를 한결 밝게 만들어준 지혜였다.

행복했던 엄마 노릇, 육아일기에 빼곡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애들 어렸을 때로 가고 싶다”는 김씨. 그에게 육아는 그만큼 행복한 기억이다. 그 과정이 두 권의 육아일기 ‘꿈나무’와 ‘꽃잎’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김씨는 첫째 승환(31)씨를 낳았던 날부터 육아일기를 썼다. 1978년 10월 19일. “아가야, 자아 시작이다. 엄마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돌봐줄게”로 시작한 육아일기에는 정말 별별 얘기가 다 담겨 있다. 매달 키와 몸무게를 재 그려놓은 그래프와 두 달에 한 번씩 만들었던 하루 생활일정표, 직접 만들어줬던 아기 신발본과 옷본 등. 심지어 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할 때 도와주는 방법도 있다. “아기를 반듯하게 눕혀놓고 아기의 오른쪽 발목에 왼손을 대고 왼쪽으로 뒤집을 수 있게 아기 허리를 돌려준다….”
육아일기의 효용은 컸다. 특히 딸 아름(29)씨의 사춘기 때. 엄마와 다투고 화가 나 혼자 들어간 방에서 딸은 자신의 육아일기를 들춰봤다고 한다. “그러면 엄마가 날 사랑하는 게 다 보여서 화가 풀렸다”는 게 딸의 고백이었다.

육아 기록을 오디오로도 남겼다. 녹음기와 공테이프를 늘 준비해 두고 있다 ‘이때다’ 싶은 순간에 녹음 스위치를 눌렀다. 아이들 옹아리부터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 등을 지금도 언제든지 재생시킬 수 있다.김씨의 육아 철학은 ‘주의해 관찰하면서 버려둔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억지로 강요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았다. 대신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조성했다. 벗은 옷 정리하는 습관은 잠옷 주머니로 들였다. 삐에로 모양의 주머니를 침대 옆에 걸어두고, 아침에 일어난 아이에게 “어머, 삐에로 아저씨 배가 홀쭉해졌네”라고 말해 옷을 집어넣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유난히 입이 짧았던 둘째는 이유식 먹는 것을 싫어했다. 김씨의 해법은 ‘이유식 자동차’. 거북이 모양의 헝겊 인형을 만들어 아이가 타고 놀게 했다. 그러다 아이 기분이 좋을 때 슬쩍 한 숟가락씩 이유식을 먹였다. ‘이유식 자동차’로는 돈도 벌었다. 1981년 저축생활추진위원회 주최 새생활 공모전에 출품해 우수상을 받아 상금으로 50만원을 받았다. 당시로선 큰돈이었다.

김씨는 자신의 엄마 역할에 지금도 만족한다. 너무너무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이었단다. 게다가 “엄마 노릇을 충실히 했기에 동화를 쓰고 싶은 욕구도 생겼고 마흔 살 늦은 나이에 동화작가가 될 수 있었다”니, “‘엄마’는 절대 밑지는 자리가 아니다”는 그의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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