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폐기물이 쌓인다]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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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산업폐기물 대란 (大亂) 을 촉발시킨 직접적 요인은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지만 밑바닥엔 정부의 무대책 (無對策) 이 도사리고 있다.

거액의 리스자금을 끌어들여 설비투자를 해온 업체들은 IMF사태 이후 환율 급등으로 막대한 금융비용 부담을 추가로 안게 됐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20개 업체가 6천3백67만달러의 외자를 도입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소각에 필요한 연료가격과 공공요금이 올라 원가부담도 커졌다. 이 와중에서 폐기물을 배출하는 제조업체들도 경영난을 이유로 원가절감 차원에서 처리비용을 종전보다 낮게 제시했다. 제조업체들의 조업중단·단축으로 폐기물 배출량 자체도 IMF사태 전의 6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

이래 저래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당수 업체들은 현금 조달을 위해 원가인 t당 11만~12만원에 훨씬 못미치는 5만~8만원의 덤핑가격으로 폐기물을 받아들이고 있다. IMF사태 이전의 t당 처리가격은 20만원이었다.

지난 15일 부도난 D환경의 경우도 IMF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케이스. 지난해 3월 리스로 외자 1백70억원을 도입, 액상소각로·구동화격자식 소각로 등 최신시설을 설치했던 이 업체는 환율급등에 따른 환차손 때문에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이 30억여원을 넘어섰다.

게다가 주거래처인 K.H.M사 등 대기업들이 부도나 여기서 받은 4개월짜리 어음이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수집상은 '떠넘기기'

이 회사는 부도를 막기 위해 지난해 폐기물 처리가격인 22만원의 3분의1 가격인 8만여원에 폐기물을 받아들여 감당못할 정도의 분량을 쌓아놓게 됐다.

회사관계자는 "소각로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유류.인건비 등 최소 경비가 t당 11만~12만원은 되지만 공장을 가동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덤핑하고 있다" 고 말했다.

S산업 사장은 "부도가 나서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데도 채권자인 폐기물 수집상들이 하루에도 몇차례씩 어거지로 가져다 놓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 폐기물량이 늘어난 것" 이라며 "불법인줄 알지만 그동안 소각로 운용비를 마련하지 못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고 하소연했다.

방치된 폐기물의 처리방향도 전혀 가닥이 잡히지 않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는 가운데 허가권자인 지방자치단체는 "막대한 처리비용을 우리가 부담할 수 없다" 며 제3자 인수를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지가격보다 처리비용이 더 커 방치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3년전 부도난 N기업의 주거래 은행인 K은행은 이 회사 공장을 여러차례 경매에 부쳤으나 아직도 매수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 공장부지 가격은 10억여원인데 쌓여있는 산업폐기물의 처리비용은 20억원이 넘어 '배보다 배꼽이 큰 셈' 이 됐기 때문이다.

처리허가를 내준 인천 서구청은 "국민의 세금으로 막대한 처리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 며 뒷짐만 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부도난 H산업의 경우도 지난달 법원경매에서 감정가 30억원에 호가 (呼價) 됐지만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허가권자인 대전시는 지난 2월 이 회사를 대전지검에 고발해놓은 상태. 대전시청 관계자들은 "행정기관이 그 많은 폐기물을 떠안을 수 없기 때문에 제3자 인수를 통한 해결이 현재로선 유일한 대안"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태의 발생부터 사후처리까지 어느 한 대목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보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公益사업에 지원인색 업계 관계자는 "폐기물처리 산업이 공익성이 강한 분야인데 정부지원은 창업때의 2억~3억원에 불과한 실정" 이라며 "우리가 망해 버리면 누가 폐기물을 치울 것인가" 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중앙대 이상돈 (李相敦.환경법) 교수는 "최근의 덤핑경쟁은 결국 폐기물의 정상적인 처리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불법매립 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며 "80년대초에 토양오염 책임법 등을 마련해 엄격한 법 집행을 한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산업폐기물처리를 공익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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