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에 억류된 유씨, 정부는 잊어버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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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개성공단 근로자 유씨가 북한에 억류된 지 오늘로 67일째다. 그동안 정부와 현대아산 측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등을 통해 매일 유씨 문제를 거론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조사 중’이라는 두 차례 발표 이외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 ‘조사 중’이라는 발표조차 우리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가입을 막아보려는 의도였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똑같이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한 대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어제 북한은 미국 기자 2명을 재판했다. 이들은 감옥이 아닌, 호텔 같은 초대소에 머물며 미국의 가족과 전화 통화도 했다.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 관계자와 면담도 여러 차례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입만 열면 ‘우리 민족끼리’를 되뇌는 북한이 ‘같은 민족’인 유씨에 대해선 오히려 더 비인도적 대우를 하고 있으니 그 이중적 태도에 기가 막힐 뿐이다. 북한은 유씨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설명해야 하며, 현재 어디서 어떤 상태로 지내고 있는지 알려주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 멋대로 붙잡아 가둔 채 아무런 설명도 없는 것은 국제관례는 물론 남북이 합의한 신병 처리 방법도 깡그리 무시한 부당한 처사다. 대낮에 사람을 납치해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집단과 다를 바 없다.

북한에서 간첩죄 또는 반혁명죄를 쓴 주민은 국가보위부에 끌려가 1년까지도 조사받고 재판 없이 총살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다고 한다. 그동안 가족과의 면담은 물론 통보조차 하지 않으며 결국 가족들도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유씨에 대한 처우는 간첩죄를 지은 북한 주민에 대한 처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대처도 너무 소극적이다. 통일부나 현대아산 이외에 다른 정부 기관이 나선 적이 없다. 2007년 아프간 탈레반에게 우리 국민들이 납치됐을 때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써 가며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데려온 적이 있다. 국가정보원이 직접 나선 것을 자랑까지 했다. 외교통상부나 국가정보원은 뭐하고 청와대는 뭐하나. 이제라도 범정부적으로 대처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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