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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제2장 길위의 망아지

"알고 나시면, 별것도 아닌 걸요. 떠돌고 있는 와이담에서 음률을 붙이기 위해 따온 것에 불과한 거예요. 산골에 살고 있던 어떤 사람이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에 모처럼 꿩 한 마리를 산 채로 포획했던가 봐요. 꿩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 사람의 꿩 잡는 솜씨를 구경하고 서 있었더랍니다.그런데 잡은 꿩을 요리하자면, 상식적으로는 우선 털을 끓는 물에다 살짝 튀긴 다음에 뽑아야 손쉽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이웃사람들에게 꿩 잡은 생색을 내려 했던 것인지, 잘난 체하려는 심산이었든지 꿩을 뜨거운 물에 튀기는 법도 없이 그냥 산 채로 생털을 뽑기 시작했어요. 바로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산 꿩의 털을 거의 뜯어서 알꿩이 되어갈 무렵이었어요. 이 사람이 잠시 부주의했던 사이에 털이 뽑히면서 발버둥치던 꿩을 놓쳐버린 거예요. 털이 죄다 뽑히긴 했지만, 목숨 한 가지만은 멀쩡했던 알꿩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뒷산 숲속으로 도망치는 거예요. 얼마나 날쌔고 빨랐든지 낚아채긴커녕 뒤쫓을 겨를도 없었어요. 꿩의 입장에선 목숨을 내걸고 튄 것이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뒷산 숲속으로 숨어버릴 수 있었던 거죠. 그러나 당사자는 이웃사람들이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 잘난 체하고 생털을 뽑다가 꿩을 놓쳐버리고 나니까, 분통도 터졌겠지만, 마땅히 분풀이할 곳도 없었어요. 게다가 이웃사람들 보기에 얼마나 계면쩍고 무안했겠어요. 그 사람은 체면치레라도 한답시고 꿩이 사라진 숲속을 향하여 입을 비쭉거리면서 불쑥 한마디 뇌까리더래요. 꿩 지만 춥지 뭐. 그때는 아직 겨울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 "태호의 장타령에는 목숨을 겨우 건진 알꿩의 비애가 있어서 슬프게 들리는 것이었군. " "그럴지도 모르죠. " 그들은 서둘러 저녁밥을 먹은 뒤 진부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봉평 읍내와 장평을 거쳐 역시 국도를 따라 진부에 도착하는 노정은 자동차로 한 시간도 채 못되는 거리였다.

진부에 도착한 시각이 저녁 7시를 약간 넘긴 초저녁이었다.먼저 진부로 떠났던 두 사람의 소식을 알려면, 지난 파수 때 안면을 터놓았던 땅거미식당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산나물 수집을 위해 시골마을을 돌고 있을 두 사람이 일찌감치 진부로 돌아와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곧장 식당을 나와 상진부 쪽으로 차를 몰았다.상진부를 벗어나 오대산 길목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산책로가 잘 가꾸어져 있기로 소문난 특급호텔 하나가 들어선 것을 눈여겨 봐두었기 때문이었다.

그 호텔의 규모와 투숙객들의 수효를 살펴봐서 내일 아침엔 그 입구에다 좌판을 벌인다는 생각에서였다.

거기서 못다 팔면, 좌판을 장터로 이동할 작정이었다.그러나 두 사람이 호텔 출입문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로비를 오가던 호텔 종업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느새 휴양지에 있는 특급호텔을 출입하는 신분의 사람들로서는 규격과 체급 미달의 사람들로 전락해 있었기 때문이었다.우선 흙투성이의 신발은 그렇다 치고라도 땟국이 꾀죄죄한 건빵바지 (건빵 모양의 주머니가 다닥다닥 연이어 부착된 다용도 바지)에 구김살이 질 대로 진 낡은 점퍼 차림은 누가 보아도 거부감을 느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제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웨이터 한 사람이 그들을 불러 세우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얼떨결에 커피숍을 가리켰다.

그러나 웨이터는 고개를 완강하게 가로저었다.

예컨대 말은, 호텔의 품위 유지를 위해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정중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으나 표정은 매우 상스럽고 험악했다.비윗장이 뒤틀린 태호가 살벌한 눈길로 웨이터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서넛을 헤아리는 건장한 웨이터들이 주위로 몰려들면서 삼엄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그들의 제지를 아랑곳 않고 커피숍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한 사람의 웨이터가 태호에게로 앞가슴을 와락 쏟아부으며 진로를 가로막고 나섰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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