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국회는 북한 도발이 안중에도 없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국회법에 따른 6월 국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여야의 신임 원내대표는 어제 첫 회동을 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란 벽에 부닥쳐 일정을 잡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8일 개회’를 제안했으나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대통령 사과와 법무장관·검찰총장 등 책임자 사퇴, 특검·국정조사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쇄신특위는 민심 수습을 위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당 지도부 사퇴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 상황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서거 정국’을 푸는 방안으로 정권은 정권대로 국정쇄신책을 추진하되 야권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현 정권의 정치보복이었다고 규정하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과 가족에 대한 수사는 박연차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불법 혐의에 대한 사법권의 정당한 발동이었다. 수사에 일부 무리가 있었다는 주장과 수사의 이런 본질은 다른 것이다. 전국적 추모 열기의 밑바닥엔 분명 현 정권에 대한 실망과 비판의 정서가 깔려 있다고 본다. 그러한 민심의 소재를 들어 비판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야당의 몫이다. 그러한 정책 비판과 사과 요구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지금의 사과 요구는 사태의 본질과는 달리 충격 받은 민심을 이용해 정권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공세로 비춰진다.

특히 국회 개회를 막는 건 정도가 아니다. 국회는 사회의 갈등을 원내로 수용해 여과하고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하는 의무와 기능을 갖고 있다. 대정부 질문과 상임위가 바로 그런 것을 위한 토론의 장이다. 검찰수사만 하더라도 법사위에서 수사에 무리가 없었는지,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현재의 관행을 어떻게 개선할지를 본격적으로 다뤄야 한다. 국회의 토론·연구에 머리를 맞댈 생각은 않고 국회 개회에 이런저런 조건을 내세우는 것 또한 서거 정국을 이용하려는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 국회가 사회 갈등의 용광로라는 책임을 저버린다면 갈등은 국회 밖으로 분출돼 사회 혼란을 부르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강경한 시민단체·노조 세력은 6·10 항쟁과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념일 등에 맞춰 대규모 장외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란 문제 이외에도 6월 국회는 다뤄야 할 중요하고도 시급한 현안이 수두룩하다.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서해안 진지에 포탄 비축을 늘리는 등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경제위기의 한가운데서 고용기간 만료가 다가오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 여야는 시급히 법안을 고쳐야 한다. 미디어 관련법 등 여야가 6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한 현안도 적지 않다.

국민의 차분한 애도 속에서 노 전 대통령 국민장이 치러졌다. 다음 순서는 당·정·청이 국정쇄신을 고민하고 사회는 갈등을 풀고 국민적 화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작업이 6월 국회를 조속히 여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