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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박근혜 性的 패러디'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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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은 14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가 낯 뜨거운 장면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 사진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눈에 띄게 올려놓았다가 삭제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를 흠집내기 위한 악의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영화 '해피엔드'의 포스터를 차용한 문제의 패러디 사진은 지난 13일 한 네티즌이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것. 상반신을 일부 드러낸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여배우의 얼굴을 박 전 대표의 얼굴로 바꾸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의 남자 배우의 눈엔 '조선 동아'란 글자를 덧씌운 사진이다. 문제는 청와대 홈페이지 관리자가 이 게시물을 방문객들에게 잘 보이도록 초기화면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청와대를 강력히 규탄했다. 한선교 대변인은 "역겨움을 느낄 정도로 추잡한 사진을 어떻게 청와대가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는가"라며 "대통령 공개 사과와 홍보수석 및 관련자의 엄중 문책을 요구한다"는 성명을 냈다.

한나라당 여성 의원들도 긴급 회의를 열었다. 변호사 출신인 나경원 의원은 "청와대가 패러디 사진을 초기화면에 올린 것은 모욕죄에 해당하는 행위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며 "여성 의원들이 모두 아연실색했다"고 밝혔다.

피해자인 박 전 대표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최고의 존경을 받아야 하는 청와대가 유치하고 한심하기 그지없다"며 "청와대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나라를 이끌어 간다면 장래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라는 말도 했다. "여성을 우대한다면서 (청와대 등 여권이) 이런 일을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긴다니 위선적"이라고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문제를 삼았다. 질문에 나선 다수 의원이 노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해찬 총리는 "패러디 사진 게재는 잘못 됐지만 대통령이 사과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인에 대해 많이 행해지는 패러디이지만 성적 비하가 담겨 있어 상당히 문제를 삼아야 할 사건"이라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단 범죄가 된다고 보고 수사를 위한 기초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파문이 커지자 청와대 이병완 홍보수석은 박 전 대표에게 공개 사과했다. 이 수석은 "부적절한 패러디물 게재에 대해 홍보수석실 책임자로서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은 홈페이지 관리 책임자와 실무 담당자를 문책하라고 지시했다. 홈페이지 관리 책임자는 안영배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청와대는 '문서 경고' 수준의 문책에 그쳤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그런 정도의 대처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사이트인 '좋은나라 닷컴'을 보면 노 대통령에 대해서도 눈뜨고 보기 어려운 패러디와 욕설들이 난무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가영 기자

청와대 '홈피'초기에 14시간 동안이나 띄워

문제가 된 박근혜 전 대표의 패러디 사진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것은 13일 오후 2시43분. 한 네티즌이 올려놓았다. 이를 국정홍보비서관실의 실무 담당자가 선택해 오후 5시쯤 초기 화면의 열린마당에 옮겨놓았다.

김종민 대변인은 "열린마당에 올려지는 글이 꼭 청와대 입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담당자가 글을 선택할 때도 담당 비서관에게 일일이 확인받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안영배 국정홍보비서관이 14일 오전 일부 언론의 관련 보도를 본 뒤 패러디 사진을 오전 7시쯤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오전 9시쯤에는 게시판에서도 이를 완전히 지웠다고 밝혔다. 14시간 동안 문제 사진이 청와대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실려 있었던 것이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하루 600건에서 많게는 1000건의 글이 오른다. 이 중 담당자가 4~5건을 선택해 방문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옮겨놓는 시스템이다. 박 전 대표 패러디 사진의 경우 민감한 내용이어서 청와대 담당자가 신중하게 가려야 했음에도 상급자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부주의한 선택을 한 것이다.

평소에도 네티즌의 글 중에는 인신공격성, 음해성, 음란성 글이 적잖다. 청와대는 2일 음란성, 인신공격성 글을 삭제하고 '삼진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글이 올라와 별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홈페이지 운영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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