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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길찾는 일본경제]중.글로벌 스탠더드화…투명 경영으로 신용찾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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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기업도 금융기관을 상대로 돈놀이를 할 수 있다. " 금융불안으로 '재팬 프리미엄' (일본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의 가산금리) 이 급등한 지난해 11월. 미쓰비시 (三菱) 상사 런던지점은 자체의 높은 신용을 바탕으로 싼 값에 자금을 조달, 돈을 못 구해 쩔쩔매는 일본 은행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줘 짭짤한 재미를 봤다.

'경쟁력 = 신용 = 돈' 이라는 냉엄한 국제시장 논리가 기업과 금융기관간의 상식적인 관계까지 역전시켜 버린 것이다.경쟁력.투명성을 우선시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는 적자생존의 세계다.경쟁력을 상실한 기업과 개인은 도태되게 마련이다.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일본의 증권맨 12만명이 직장을 떠났다.야마이치 (山一) 증권의 주식은 2엔짜리 휴지가 됐고 계열사들은 산산조각이 났다.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 "미국이 아시아.유럽의 패권을 잡기 위한 고도의 전략" (교토대 佐伯啓思교수) 이란 거부감도 없지 않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게이단렌 (經團連) 은 7일 소니의 오가 노리오 (大賀典雄) 회장을 부회장에 선임하고, 금융기관 출신들을 회장단에서 내쫓았다.이단아로 따돌림당했던 소니가 "세계 표준을 성공적으로 접목한 기업" 이란 평가 속에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반면 총회꾼 비리와 접대 스캔들 등으로 상처를 받은 금융기관들은 '불신 대상 1호' 로 전락했다.

대장성도 공인회계사 시험제도를 25년만에 바꿔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불투명한 경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2차시험 합격자는 3년간 국내에서 실무를 익혀야 한다" 는 조항을 손질, 외국 공인회계사들이 자유롭게 일본 기업을 감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런 물결이 몰아치면서 가장 절박한 쪽은 금융기관들이다.도쿄미쓰비시은행은 7천1백억달러이던 자산을 6천9백억달러로 압축해 체질을 강화했다.나머지 18개 주요 은행들도 지난 한햇동안 10조엔의 불량채권을 과감하게 처리했다.

이들은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기 위해 정부로부터 2조엔의 자금지원을 받는 대신 1만5천명을 감원하고 임금을 10~20%씩 삭감하기로 했다.또 일본 4위 생명보험사인 도호 (東方) 생명은 도산 직전 세계 최대 종금사인 미국의 GE캐피털에 흡수됐다.

메이지 (明治) 생명은 독일 드레스나은행과 투자고문 분야를 합병하고 후지 (富士) 은행 등 일본 11개 금융기관들은 자딘 플레밍의 '지도' 로 투자신탁 판매회사를 설립키로 했다.홋카이도 다쿠쇼쿠 (北海道拓殖) 은행과 야마이치증권 등이 줄줄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유일한 살 길은 신용도가 높은 외국 기관들과의 제휴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세계 표준이란 새로운 엔진을 장착한 일본호 (號)가 출항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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