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밀레니엄]세계 각국 준비상황…새 세기 주도권 잡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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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시간에도 역사가 있다.인문학적 수사 (修辭)가 아니다.금세기 천체물리학은 우리의 시간과 우주가 이른바 '빅뱅' 이라는 대폭발에서 비롯됐음을 증명해 냈다.이는 시간에 종말 또한 있음을 암시한다.

물리학적인 시간이 이러한데 하물며 인간의 역사에 뜻과 비약과 패러다임의 변혁이 없을텐가.그래서 '신세기' '새 천년' 은 그것을 준비하는 인류의 몫으로 다가선다.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밀레니엄이 분홍빛일 수도, 연기 자욱한 잿빛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엔 디지털.생명공학 혁명과 경제사회 체제의 대개편이 예고돼 있다.지난 2천년간 경험은 커녕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대전환이다.그 소용돌이의 진로를 짚는 일은 앞으로 1천일간의 몫. 우선은 오늘의 우리를 점검해 보자. 전환의 출발선에서, 천년을 내다보며.

"천년의 감동을 잡아라. " 새로운 밀레니엄을 1천일 앞두고 각국에서는 과거를 반추하고 다가올 미래를 '도약과 화합의 시대' 로 승화시키려는 몸짓이 한창이다.지역별로는 그레고리력 (曆) 만을 쓰는 미.유럽이 이른바 '밀레니엄 사업' 에 적극적이다.

또 기업들도 1천년에 한번 돌아올 특수 (特需) 를 잡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있다.새 밀레니엄을 맞이하느라 분주해지기 시작한 지구촌의 모습을 살펴본다.

◇ 미국 = 21세기의 '과도년' 격인 2000년을 하루 앞둔 99년 12월31일. 세계의 시간대를 따라가면서 피라미드.만리장성.타지마할.아크로폴리스 등지에서 각종 축제와 이벤트를 벌인다.이런 모습들은 위성TV로 전세계에 중계된다.밀레니엄 장학기금 모금으로 유명한 민간단체 '밀레니엄 소사이어티' 가 기획하는 행사다.

미국은 새로운 1천년이 우주시대인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98년에 이어 2001, 2003년에 각각 화성탐사선을 발사한다.또 정보.문화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차원에서 모든 학교의 교실과 도서관을 인터넷에 연결시키는 '인터넷 고을' 사업이 펼쳐진다.

케네디센터에서는 2000년 1년 내내 각종 공연으로 '밀레니엄 무대' 를 화려하게 채운다.과거 1천년동안의 주요 사건.인물 등을 하이라이트로 묶은 '밀레니엄 미니츠 (Minutes)' 라는 TV 프로그램도 방영된다.

◇ 유럽 = 베를린 시내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 높이 7.5m의 콘크리트 기둥 4천개로 '나치 학살 희생자 메모리얼' 이 웅장하게 건설된다.부끄러운 천년과 결별하고 역사와의 화해를 선언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다.

독일은 2000년까지 본에서 베를린으로 수도 이전을 끝내는 것을 계기로 1백43개국이 참가하는 'Expo 2000' 등 대형 이벤트들을 잇따라 갖는다.파리시는 센 강변에 2백m 높이의 '지구탑' 을 개막한다.

21세기 파리의 새로운 명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지난해 4월에는 에펠탑에 가로 33m, 세로 12m의 대형 전광판을 설치했다.

프랑스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21세기 포럼' 을 설치, 각 분야에 걸쳐 새 시대에 대비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영국은 런던 북부 그리니치에 지름 3백60m, 높이 53m의 거대한 밀레니엄 돔을 건설하고 있다.

또 템스강에 1백년만에 새 다리를 건설한다.유럽연합 (EU) 집행위는 21세기 무역.투자 자유화를 겨냥한 '밀레니엄 라운드' 협상 개시를 주창하고 있다.

◇ 중국.일본 = 밀레니엄 행사에 소극적이었던 중국이 만리장성에 지난달 21세기 시계탑을 건설했다.다가올 세기야말로 '슈퍼 차이나' 시대로 만들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다.

만리장성의 바다링 (八達嶺) 옹성 (瓮城) 광장에 세워진 높이 5.8m, 폭 4.5m의 직사각형 시계탑 맨위엔 '분초를 다퉈 조국건설에 나서자 (爭分奪秒 建設祖國)' 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일본은 지자체 차원의 기획이 활발하다.도쿄 (東京) 디즈니랜드의 제2 테마파크가 2001년 개장되고 야마나시 (山梨) 현은 거대 테마파크 '중국문화촌' 을 2000년 착공한다.기후 (岐阜) 현이 '웰컴 21' , 시즈오카 (靜岡) 현이 '이즈 (伊豆) 신세기 창조 축제' , 후쿠시마 (福島) 현이 '우츠쿠시마 미래전람회' 를 열게 된다.

일 우정성은 2000년 방송위성 'B­4' 발사후 디지털 하이비전 방송을 계획하고 있다.'벽걸이 텔레비전' 이나 세계 공통의 차세대 휴대전화 실용화 계획, 차기 소형 민간여객기 (YSX) 첫 비행계획 등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워싱턴·파리·도쿄 = 김수길·배명복·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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