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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경영 교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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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세계 최대의 자동차업체인 도요타가 14년 만에 창업 일가 출신의 사장을 맞는다. 도요다 일가의 4세인 아키오(53)가 다음 달 사장에 오른다. 해외총괄 부사장인 그는 올 4월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임명을 받았다.

도요타는 2007년 2조2703억 엔(약 30조원)의 영업이익으로 일본 신기록을 세웠다가 불과 1년 만인 지난해 4610억 엔(약 6조원)의 영업적자로 돌아섰다. 적자는 1941년 도요타가 회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은 높다.

도요타의 창업 일가 경영은 도요다 쇼이치로(83) 현 명예회장의 동생인 다쓰로가 95년 사장에서 물러나면서 끝났다. 이후 지금까지 전문경영인이 사장을 맡았다. 이런 경영 승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숱한 위기 때마다 창업 일가와 전문경영인이 안정적으로 경영교대를 하면서 극복해 왔다.

도요다 일가의 지분율은 2%에 불과하다. 오너가 아니다. 순환출자나 지주회사를 통해 지배력 확보를 시도한 적이 없다. 매출 40조 엔(약 520조원)에 36만 명이 일하는 도요타 그룹의 상징적인 존재다. 도요다 가문이 있음으로 해서 쓸데없는 파벌 싸움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역할론도 나온다.

도요다 일가는 100년 넘는 그룹 역사에서 단 한 번도 비자금을 만들거나 도덕적으로 흠이 난 적이 없다. 발명가였던 창업주는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존경을 받는다. 후손들도 창업주의 ‘현장을 중시하라’는 유지를 받들어 공장에서 작업자와 함께 뒹굴며 낭비를 제거하고 생산성을 높인 ‘가이젠(改善)’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면서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성장시켰다. 지금도 공장 곳곳에는 창업자가 현장에 남긴 일화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 창업 일가는 우수한 자손만 선별해 경영에 참가시켰다. 역할이 끝나면 조용히 은퇴했다. 제 몫을 찾아 분사하거나 재산을 놓고 다툼을 벌인 경우도 없었다.

이 점에서 우리와 다른 것은 명백하다. 일본 언론이나 시민단체는 창업 일가의 사장 복귀에 대해 일절 시비를 걸지 않는다. 오로지 결과를 지켜볼 뿐이다. 도요타가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면 그때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식이다.

요코하마 국립대 조두섭(경영학) 교수는 “경영승계에는 능력만이 판단의 기준일 뿐 2, 3세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아키오가 자신의 고독한 결단을 통해 도요타를 흑자로 전환시켜 경영능력을 보여주면 된다”고 말한다. 능력만 있다면 자식 승계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일본 경제계의 상식인 셈이다.

한국전쟁 이후 60년을 바라보는 국내 기업사에서 경영 교대는 늘 위기 요소였다. 여러 재벌 기업이 경영 교대 과정에서 분란과 잡음을 만들었다. 심한 경우에는 좌초 위기까지 몰렸다. 도요타식 경영 교대가 한국형 지배구조의 정답은 아니다. 어떤 기업이든 그 나라의 법률과 역사, 그리고 국민 정서에 맞는 지배구조를 만들어 안정적으로 교대를 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주변의 간섭 때문에 위기가 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김태진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