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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정세균 일정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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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6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일정표는 텅 비어 있었다.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사흘째 모든 일정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대신 정 대표는 이날도 전날에 이어 서울역의 노 전 대통령 분향소로 ‘출근’했다.

26일 오전 민주당 정세균 대표(앞)와 이강래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후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그는 뙤약볕 아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상주로 지정된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과 나란히 서서 조문객을 맞았다. 노영민 대변인은 “조문객 중엔 ‘이런 비극을 초래한 정부·여당의 책임을 민주당이 매섭게 추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많다”며 “그러나 정 대표는 지금은 추모와 애도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시작을 전후해 해오던 공개발언도 23일이래 중단했다. 장례일인 29일까지 침묵을 지킬 것이라고 한다. 아침의 당 지도부 회의를 마치면 매일 서울역 분향소에서 상주 역할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대표실 관계자가 밝혔다.

그는 노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곧바로 봉하마을로 달려가 아들 건호씨와 함께 밤새 빈소를 지켰다. 이튿날 귀경해서도 분향소에 개근하는 정 대표의 모습은 4·29 재·보선 당시 격전지 인천 부평을에 매일 출퇴근하며 공들이던 모습과 흡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평 올인’에 이어 ‘분향소 올인’이란 말도 나온다. 민주당 의원 83명도 매일 10여 명씩 조를 짜 봉하마을과 전국의 분향소에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다.

당 공보국 관계자에 따르면 정 대표는 장례 기간만큼은 여야 간 정쟁이나 책임 추궁 대신 온 국민이 고인을 추모하며 차분히 보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본인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란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당이 국민의 슬픔과 분노를 위로해야지, 부채질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당 안팎에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동안 다소 굴곡이 있었던 참여정부 측 인사들과 정 대표, 나아가 민주당의 관계를 복원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총선 참패에 이어 ‘박연차 게이트’로 당내 친노 인사들이 검찰 수사 칼날을 맞자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7일 발표된 ‘뉴민주당 플랜’ 초안은 “참여정부의 기본 가치와 정책 방향은 옳았지만, 정책수단은 유효하지 못했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정 대표와 의원들이 참여정부 측 인사들과 나란히 상주 역할을 맡으면서, 양측의 스킨십도 다시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편 민주당은 장례가 끝나면 6월 임시국회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검찰 책임론 등을 제기하며 대여 공세를 펼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총장 문책과 천신일 게이트 특검 및 국정조사 요구 등이 검토되고 있다. 정 대표가 30일께 기자회견을 열어 정국 구상을 밝히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강찬호·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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