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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치 일본외상 본지 단독회견]6자회담 기본방향 찬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 외상이 외국언론과의 단독인터뷰 요청에 응하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 미묘한 현안들로 점철된 한.일 외교관계를 볼 때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외상이 방한 (21일) 직전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것은 양국이 서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할 시대가 왔다는 인식의 반영으로 보인다.

그는 시골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같은 풍모로, 인터뷰 내내 부드러운 표정이었지만 민감한 질문에는 미리 준비한 답변서를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가는 신중함도 잃지 않았다.

다음은 18일 오후 외상접견실에서 오부치외상과 중앙일보 일본총국 최철주 (崔喆周) 총국장이 나눈 일문일답.

-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과거 김영삼 (金泳三) 정부보다 우호적인 방향으로 한.일 외교관계를 풀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신정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일본도 그에 부응해 21세기를 향한 더 폭넓고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金대통령은 일본이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다양한 방법으로 확실하게 추진해 달라고 격려했다.

앞으로 한국정부와 긴밀히 연락을 취하면서 북.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해 나가겠다."

- 다음달 2일 런던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M)에서 김대중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어업협정 개정문제도 논의되지 않겠는가.

"ASEM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 주변 환경정리를 하러 이번 주말에 서울에 간다.

어업협정은 불행하고 유감스런 결과를 낳았다.

일본은 당연히 한국과의 새로운 협상체결을 원하고 있다.

양국 어업관계자들의 이해가 중요한 만큼 어업단체나 수산업계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양국 농수산성의 협상도 필요하다.

수역획정뿐 아니라 어종이나 자원보호도 중요하다.

협약체결은 외무성이 맡게 될 것이다.

양국정상의 회담에서는 아시아의 평화와 경제.금융위기가 의제가 될 것이다.

어업문제는 외무장관회담에서 주로 논의한 뒤 결과를 정상들에게 보고하는 것이 절차가 아닌가 싶다.

어제 총리와 외무.관방장관이 만나 어업문제를 협의했다.

새 협정체결을 위해 일본이 노력해 재협상하도록 하자고 결론을 냈다."

- 이번 주말 방한때 경제협력.역사인식 문제 등도 다뤄지는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겠다.

아시아지역의 광범한 문제 이외에 구체적 안건에 들어가자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도 논의할 생각이다."

-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 에 대해 일본정부 차원에서는 마무리가 끝났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는가.

" (미리 준비한 답변서를 조심스럽게 읽어 나가면서) 金대통령 자신이 '납치사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지는 않겠지만 진상규명은 필요하다' 고 말했다.

당시 양국간 최고수뇌부가 외교적으로 결론지은 사건이라는 정치적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 적어도 진상규명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민간차원의 조사단을 발족시켜야 한다는 일부 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도 일본입장에서 진상을 규명중이다.

형사사건으로서 조사중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문제다.

金대통령도 언급한 만큼 진상해명작업은 이뤄질 것이다.

사건이 일본 국내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일본이 사실관계를 추적중이지만 정치적 면에서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 金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일본대중문화 개방추진과 월드컵 공동개최때 일왕 초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제안했다.

이의 실현을 위해 일본도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데.

"문화에는 당연히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일본문화에 대한 한국정부의) 심한 규제가 있었다.

일본가수가 서울에 갔으나 콘서트를 못한 경우가 있었다.

金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좋은 문화와 나쁜 문화가 있다고 하지만… (웃음) , 좋은 문화.세계적 문화가 흘러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金대통령의 문화개방 제안은 자신감의 표현이라고생각한다."

- 한국 신정부는 한반도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4자회담과 별도로 일본을 포함한 6자회담 구상을 내놓았다.

일본정부의 입장은.

"정부차원에서 특별히 입장을 결정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만약 6자회담이 성사되면 일본도 적극적으로 참가해 다른 나라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눌 생각이다.

실현 가능성은 약간 염려되지만 나는 회담의 기본방향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오부치 외상은 인터뷰를 끝내면서 "한국을 몇 번 방문했느냐" 는 질문에 한동안 손가락을 꼽아 보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 라고 답변할 만큼 한국을 잘 아는 지한파 (知韓派) 다.

그는 "한국에 친구들이 많지만 지금은 대부분 야당 (한나라당) 이 돼 버렸으니…" 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대담=최철주 일본총국장·정리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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