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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일병 사망' 조사하던 의문사위·국방부 진실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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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회의실에서 박종덕 조사3과장이 허원근 일병 의문사 재조사 과정에서 국방부 특조단 관계자가 조사 기록을 은폐했다며 관련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을 조사하던 중 허 일병 사건을 수사한 '국방부 특별조사단'의 한 관계자로부터 '권총 위협'을 받았다는 주장이 12일 제기됐다. 의문사위는 또 지난 3월 국방부 전 특조단장에게서 "죽이겠다"는 협박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 측은 의문사위의 주장을 '날조'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두 국가기관은 동일한 사건을 놓고도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는 등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측은 상대방에게 서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권총 발포하며 협박"= 의문사위는 이날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2월 자료를 입수하는 과정에서 의문사위 박종덕 조사3과장 등 조사관 두명에게 국방부 특조단 출신의 인길연(38.현 2군 사령부 검찰담당관)상사가 권총 한발을 쏘면서 위협한 뒤 수갑을 채워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의문사위는 총성과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 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지난 2월 26일 대구에 사는 인 상사가 허 일병의 타살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박 과장 등이 인 상사의 집을 실지조사해 자료를 확보했다. 당시 인 상사가 집에 없어 부인에게 공문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시간 뒤 인 상사가 나타나 자료를 되돌려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박 과장의 얼굴 옆으로 총을 쏜 뒤 두 사람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이어 승강이 끝에 인 상사는 수갑을 풀어준 뒤 "자료를 돌려주지 않으면 당신도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라며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자해하려고 해 자료를 돌려줬다는 것이 의문사위의 설명이다.

의문사위는 또 "지난 3월 전 특조단장이 의문사위 조사관들에게 '나한테 말도 한마디 없이 언론에 까발리면 당신네들 다 죽어'라며 수차례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의문사위가 불법침입"= 인 상사는 의문사위의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아내 혼자 있는 집에 불법 침입해 아내를 폭행하고 자료를 갈취했다"고 반박했다.

인 상사는 "당시 경찰에 이를 신고했고 조사관 두명을 주거침입과 절도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려고 수갑을 채우려다 조사관들이 내 목을 조르며 반발해 가스총 공포탄을 공중에 한발 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조사관 한명이 '이 기회에 옷을 벗어라. 내가 국가인권위원회 4급 공무원으로 특채시켜 주겠다. 열린우리당 대구시 간부가 K대 선배인데 내가 청와대 들어가면 도움 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인 상사는 "이후에도 조사관들이 면담과 휴대전화 음성.문자 메시지 등을 보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당신 죽어' '두고 보자'며 협박했다"고 말했다.

전 특조단장의 협박 발언과 관련, 국방부는 "당시 회식 자리는 의문사위와 특조단이 진실을 규명하는 일을 함께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며 "특조단장이 '조사 결과를 비교하고 공개하자.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리면 죽는 수가 있어(웃음)'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허 일병 사망 사건=1984년 4월 허 일병이 군대에서 좌.우 가슴과 머리에 세 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 헌병대는 자살로 결론내렸다. 의문사위(1기)는 2001년 6월 유족의 진정으로 조사에 착수, 2002년 8월 타살로 규정했다. 국방부도 자체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3개월여 조사한 끝에 "의문사위 조사는 조작.날조이며 허 일병은 자살한 것"이라고 발표, 의문사위와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해 10월 재조사에 들어간 2기 의문사위는 지난달 타살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나 ▶총을 쏜 사람 ▶시체가 옮겨진 과정 등의 조사가 부족해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내렸다.

김승현.임미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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