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 23. ABC대회 첫 우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 ABC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귀국한 필자가 공항에서 변웅전 아나운서(右)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1969년 11월 29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 태국 방콕에서 제5회 아시아농구선수권(ABC)대회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상대는 지난 대회 우승팀이자 아시아 최강인 필리핀. 9개 팀이 풀리그를 벌인 이 대회서 한국은 파죽의 7연승을 거두고 필리핀과 맞붙었다. 이날 아침 한국팀 주장 김영일은 선수들을 모아 놓고 손가락을 깨문 뒤 피를 보여 주며 "2년 전 서울에서 당한 패배를 설욕하고 반드시 우승하자"고 독려했다. 선수들의 각오가 남달랐음은 물론이다.

한국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코트에 나가자 필리핀 선수들은 일찌감치 꼬리를 내렸다. 이날 한국 선수들의 분전은 눈부셨다. 특히 아시아 최고 슈터 신동파(SBS 해설위원)의 슛은 백발백중이었다. 혼자 39득점을 쓸어담았다. 95-86, 9점 차 승리. 한국이 8전 전승을 거두고 마침내 처음으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선수 시절엔 한 번도 아시아 정상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는데 지도자로 데뷔한 해에 영광의 자리에 오르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20여개의 전법을 준비해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전략 노출을 피하기 위해 참가팀들을 A.B.C 세그룹으로 나눠 각각 다른 작전을 펼쳤다. 한국팀의 스타팅 멤버는 센터 김영일, 포워드 이인표.신동파였다. 가드는 김인건.곽현채.유희형(KBL 경기이사) 가운데 두명을 번갈아 기용했다.

A급으로 분류된 필리핀.일본을 제외한 팀과의 경기 땐 우리 전력을 최대한 숨겼다. 그 핵심은 신동파를 뒷전에 숨기는 대신 유희형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연습 때 덩크슛을 꽂을 만큼 탄력이 좋은 유희형은 내 기대대로 상대방 골대를 유린했다. 일본.필리핀 감독은 당연히 유희형을 요주의 인물로 점찍었다. 평균 35점대의 득점력을 가진 신동파는 20점도 못 넣었다. 두 감독은 신동파를 한물간 선수로 평가하는 듯했다.

하지만 역시 신동파는 아시아 최고 슈터였다. 일본.필리핀과의 경기 땐 100%에 가까운 슛 정확도를 자랑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집중 견제를 당하지 않은 덕분에 신동파는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일본.필리핀 선수들이 초반부터 신동파를 집중 견제했다면 경기 양상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나는 다른 팀과 경기를 치러가며 뽑은 각종 데이터를 통해 우리와 일본, 우리와 필리핀의 대결을 가상해 보았다. 그 결과 일본엔 15점, 필리핀엔 14점 차로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나는 이 내용을 선수들에게 일러주며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했다. 내 말을 전적으로 믿은 선수들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경기가 끝나자 주장 김영일을 비롯한 선수들이 달려와 나를 코트 안으로 끌고가더니 헹가래를 쳤다. 선수 시절 느끼지 못한 묘한 감동을 맛보며 '이 맛에 내가 농구를 떠날 수 없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회 우승으로 한국은 당당히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확보하고, 이듬해 유고슬라비아로 날아가 각 대륙을 대표한 농구 강국들과 실력을 겨뤘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