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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 이현민 가수 데뷔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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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다. 소중한 노래 3곡이 담긴 첫 싱글앨범 '원즈 퍼스트 러브(One's First Love)'를 발표한 지 이제 한달 여, 때때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노래를 들을 땐 아직도 꿈만 같다.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서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첫번째 버라이어티 방송도 무사히 마쳤다. 지난 달 데뷔곡 '널 갖겠어'로 가요계라는 정글에 막 '입성'한 신인가수 이현민(24·사진)이다.


노래에는 자신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내 그룹 보컬로 활약했고, 실용음악과에 진학하려 노래학원에서 수업도 들었다. 그에게 '가수 데뷔'라는 기회가 찾아온 것은 고 3 겨울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 뽐내기 대회'에 나가면서. "주장원에 올라 연말 결선까지 갔었어요. 안타깝게 우승을 놓쳤는데, 옆 스튜디오에서 다른 방송을 진행하던 한 가수의 매니저분이 제 노래를 듣고 '혹시 가수해 볼 생각이 없느냐'며 말을 걸어 오셨죠." 이때 만난 이가 현재 그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큰엔터테인먼트의 최보욱 대표다.

기획사에 소속되면 금방 가수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물정 모르는 생각이었다. 당시 100kg에 가까웠던 몸무게를 줄이느라 운동을 시작했고, 노래 연습도 열심히 했다. 2004년 첫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고수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KBS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의 OST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 밤 새워가며 두 곡을 녹음했지만, 발매된 음반에는 자신이 부른 곡 중 하나가 다른 가수의 목소리로 교체되어 있었다. "제 노래가 마음에 안드셨던 거죠. 무척 절망했어요. 난 역시 자질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 했죠."

소속사를 나가 방황하기를 몇 달, 아무리 생각해도 그대로 포기하기엔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자신을 발탁했던 매니저 최보욱씨를 다시 찾아갔다. "일단 받아주긴 하겠다. 단 발성 연습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시더라구요." 이현민은 당시 유행하던 굵고 애절한 R&B용 목소리에 길들여져 있었다. 일명 '소몰이 창법'이다. 여러 가수의 노래를 비슷하게 흉내 냈지만, 자신만이 가진 개성이 부족했다. 보컬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성악 발성부터 다시 시작, 훨씬 맑고 음역이 넓은 지금의 목소리를 찾아내는데 4년여가 걸렸다.

트레이닝을 받는 동안에도 생활을 위해 편의점, 호프집 아르바이트 등 안해본 게 없다. 음반을 준비중이던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산타 분장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뛰었을 정도. 지난해 9월 첫번째 앨범을 녹음까지 다 마쳤다가 외국 작곡가와 문제가 생기면서 '엎어진' 경험도 있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이번 싱글 음반이다. '상상밴드'의 쑈기(공인석)가 작곡한 브릿팝 스타일의 '널 갖겠어'가 타이틀곡으로, "나 어떡하니 내 머리가 고장이 났나봐~"로 시작하는 애절한 목소리가 돋보인다. 가수 조규찬의 6집에 수록됐던 노래 '비가'의 리메이크 버전과 처연한 느낌이 살아있는 록발라드 '사랑, 그 허무함'도 앨범에 담겼다.

음반은 나왔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노래가 발표된 지 이틀 만에 행사 무대에 섰을 땐 자신이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가수'라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인기 아이돌 그룹 바로 뒤에 무대에 올랐는데, 다들 박수도 없이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더군요.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내려왔는지 모르겠어요." 처음 나간 버라이어티인 KBS '스타골든벨'에서도 '연예인들의 소리없는 경쟁'에 놀랐다. "방송만 보면 화기애애하잖아요. 그런데 많은 출연자 중 자신이 카메라를 더 많이 받아야하니까, 녹화중엔 은근 경쟁이 치열해요." 첫 방송출연에서 김동률과 테이의 모창을 선보여 다른 출연자들에게 "녹음 테이프를 틀어놓은 줄 알았다"는 칭찬을 들은 건 귀중한 수확이었다.

다행히 인터넷과 라디오를 통해 노래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미니홈피에 들어와 인사를 건네는 팬들도 쑥쑥 늘고 있다. "데뷔하기까지 힘들었죠. 하지만 지금 최고의 위치에 있는 가수들도 다들 나같은 시간을 거쳐왔다고 생각해요. 6년간 좌절했던 때도 많았지만, 덕분에 내 목소리에 자신이 생겼고, 왠만한 일에는 실망하지 않는 '맷집'도 생겼습니다." 그가 모델로 하는 선배 가수는 최고의 가창력을 뽐내는 박효신. "요새 네티즌들이 가수들의 MR(반주) 제거를 많이 하잖아요. 반주를 없앤 목소리만으로도 완벽한 노래를 들려주는, 그런 가수가 되겠습니다."

이영희 기자 사진=큰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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