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총리서리체제]서리체제 합헌이냐 위헌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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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종필 총리지명자는 결국 국회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金지명자에게 '총리서리 임명장' 을 수여한다.

상처투성이의 '김종필 총리서리' 는 3일부터 정부 세종로청사 총리실로 출근하게 된다.

'총리동의 정국' 은 '총리서리 정국' 으로 옮아가게 됐으며 총리서리체제에 대한 위헌시비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원을 제출하겠다고 이미 경고한바 있다.

쟁점의 핵심은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는 헌법 제86조 1항의 해석에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동의를 받지 못한 총리서리는 당연히 위헌" 이라는 주장이며 여당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국정공백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정치행위" 라고 반박하고 있다.

'조건부 합헌' 이라는 주장이다.

헌법학자들도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김철수 (金哲洙.서울대) 교수 등은 "법률적으로 현재 상황은 '동의안 처리 부존재' 로 간주할 수 있다" 며 "이 경우 국정을 비워둘 수 없기에 대통령은 정치행위로 서리를 임명할 수 있다" 고 해석했다.

대통령이 아예 임명동의안을 상정하지 않았거나 동의안이 부결됐는데도 총리서리체제로 갔다면 위헌이지만 동의안이 상정된 상태에서 본회의 자체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서리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위헌론 입장에 서있는 양건 (梁建.한양대) 교수는 "현행 헌법상 서리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 전제했다.

"국회가 천재지변이나 물리적으로 개회가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고 국회개회중 의원들의 의사표시가 가능한 상황에서 동의를 못받으면 총리의 권한행사가 불가능하다" 는 것이다.

권영성 (權寧星) 서울대교수도 이런 입장이다.

결국 '대통령이 총리서리로 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느냐, 아니냐' 의 상황해석에 관한 문제다.

이와 함께 총리서리가 장관제청권을 갖느냐 여부도 쟁점이다.

여당과 조건부 합헌론자들은 국무위원 제청권이 있다는 주장이고 야당과 위헌론자들은 당연히 제청권이 없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김종필 서리' 가 새정부의 장관을 대통령에게 제청해 내각을 구성할 경우 내각 전체에 대한 위헌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여당측은 일단 김종필서리가 집무를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가 안정되면 '적절한 시점' 에 다시 동의안을 국회에 낸다는 방침이다.

정계개편 등의 방법으로 한나라당을 잔뜩 약화시킨 후 동의안을 낸다는 계산도 했음 직하다.

헌정사에선 고건 (高建) 총리까지 30대에 이르는 역대 총리중 18명의 총리서리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91년 노태우 (盧泰愚) 대통령이 지명한 정원식 (鄭元植) 총리서리에 대해 야당이 동의를 거부할 때까지 '총리서리의 위헌성' 문제는 쟁점화하지 않았다.

그전의 권위주의 정권하에선 아예 문제제기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리서리의 위헌성을 처음 제기한 주체는 평민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때 평민당의 총재였고 국민회의의 박상천 총무는 그 당의 대변인이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전영기·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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