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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아이팟을 귀에 꽂다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말하는 사람의 손을 묶으면 “혀를 묶어 버리는 셈이다”는 아랍 속담이 있다. 이라크에 파병된 외국 군인이라면 현지인과 소통할 때 제스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다시 쥐었다를 반복하면 ‘빛’을 의미하지만 주먹을 그냥 쥐었다 펴면 ‘폭탄’이 된다.

음악감상의 패턴을 바꾼 애플 기기가 군의 작전 개념 바꿀 수도

최근 이라크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한 미군은 이라크인에게 엎드리라는 지시를 내리려고 자신이 직접 땅바닥에 엎드리는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통역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런 소프트웨어를 전장에 효과적으로 보급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미군은 많은 비용을 들여 전투용으로 특별히 고안된 휴대용 전자 통역기와 최신 소프트웨어를 장병들에게 보급했다.

그러나 이제 전장에서도 통번역 말고 여러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졌다. 미래형 ‘네트워크전(networked warfare)’을 수행하려면 장병들이 전자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부대나 무기 시스템, 첩보요원과 긴밀히 연결돼야 한다. 위성과 무인정찰기, 지상 탐지기에서 송신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분류하고 해석하려면 사용이 간편한 휴대용 다목적 단말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미군은 쉽고 익숙한 인터페이스를 갖춘 애플의 아이팟 터치와 아이폰(터치만큼은 아니지만)을 도입 중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으로 그처럼 중대한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다니,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아이팟을 사용하면 특별 설계된 군용 기기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어쨌든 애플은 납세자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자체적으로 연구개발과 생산을 해놓지 않았는가? 아이팟 터치의 소매가가 230달러 미만인 반면 군용 기기 가격은 이보다 훨씬 높다(기능은 아이폰이 아이팟 터치보다 다양하지만, 아이폰의 가격은 600~700달러로 아이팟 터치보다 훨씬 비싸다).

아이팟은 보통 보호 케이스에 담겨 나와 군사용으로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바그다드에 주둔한 미군 장교의 말대로 아이팟은 아직까지 해킹된 경우가 없다(군 당국은 아이팟 보급 물량을 밝히지 않았으며, 애플 컴퓨터도 관련 인터뷰를 거절했다). 미군은 여러 기능의 수행이 가능한 한 가지 기기를 장병들에게 지급하고 싶어 한다.

아이팟은 그런 목적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애플의 무선 애플리케이션 사이트 ‘앱 스토어’는 아이팟 터치(아이폰의 터치스크린이 사용된다)와 아이폰용으로 2만5000여 가지(계속 늘어나는 중)의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한다.

우아하고 단순한 인터페이스 덕분에 엄지 하나로 모든 작동이 가능한 아이팟에 계속 기능이 추가되면서 미군이 사용하는 장비도 하나 둘 줄어들게 됐다. 뉴저지주 포트 몬마우스에서 정보, 전자전이나 지상 탐지기 작동을 감독하는 짐 로스 중령은 “아이팟만 있으면 다른 건 필요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시중에는 아이팟 말고도 많은 휴대용 다목적 단말기가 나와 있다. 그러나 군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아이팟이다. 신병 대다수가 사회에서 아이팟을 사용한 경험이 있고, 또 실제로 갖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콘텐트를 이용하도록 훈련하기가 그만큼 쉽다.

언어 소프트웨어에 새 단어를 추가하고, 지도에 주석을 달고, 문자나 녹음된 음성(“이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을 사진과 연결하는 일이 간편하다. 애플의 전자기기는 동영상을 찍고, 저장하고, 재생하기가 쉽도록 만들어졌다. 부족 지도자가 저항세력 색출을 도와달라고 부드럽게 호소하는 동영상을 마을 주민에게 보여주면 어떤 효과가 있을지 생각해보라.

저항세력 진압작전에선 정보 공유가 특히 중요하다. 그래서 미 국방부는 전장의 군인이 정보를 얻어 이를 데이터베이스에 신속히 추가하는 일을 더욱 간편하게 만드는 기술을 원한다.

인디애나주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넥스트 웨이브 시스템은 거리 표지판을 사진으로 찍으면 다른 군인들이 올린 관련 정보(표지판에 적혀 있는 단어와 링크된 자료)를 즉각 검색해주는 아이폰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이상적인 검색 정보에는 해당 지역의 수질이나 저항세력 동조자의 사진과 이름 등이 포함된다.

미 해병은 구류 중인 용의자의 사진과 관련 보고서를 생체인식 데이터베이스에 올리는 애플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지원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얼굴 대조가 가능하다. 그래서 석방 이후에도 용의자 추적이 용이하다.

애플의 무선기기는 대단히 다재다능하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와 미 국방부는 군인들이 무인정찰기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재생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첩보 요원과 원격 화상회의가 가능한 아이팟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저격병들은 아이팟 터치나 아이폰용 ‘탄도계산기’ 불릿플라이트를 사용한다(플로리다의 군수업체 나이츠 아마먼트가 개발했다).

군 연구원들은 아이팟을 폭탄처리 로봇 원격 조종기로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이다(예를 들면 아이팟을 기울이는 정도로 로봇을 조종한다). 수단에서 미군 고문단은 아이팟을 이용해 부족 지도자들을 대할 때 필요한 예절을 배운다.

통역 기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에게는 아랍어, 쿠르드어, 아프가니스탄 2대 공용어를 통번역해 주는 ‘V커뮤니케이터’라는 새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프로그램은 해당 언어와 함께 자주 사용되는 제스처나 몸짓을 그림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의복이나 무기 등의 사진도 보여준다.

군 조달 담당자들은 군사용으로 쓸모 있는 애플 기기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에 “엄청난 노력”을 쏟는다고 V커뮤니케이터를 개발한 플로리다 소프트웨어 업체 Vcom3D의 간부 어니 브라이트가 말했다. 아이팟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법을 이미 바꿔 놓았다. 이제는 전쟁 쪽으로 슬슬 눈을 돌린다.

BENJAMIN SUTHERLAN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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