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즐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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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30면

회사에 필요한 인재는 누구일까, 또 어떤 기준으로 직원을 뽑을 것인가는 기업 경영자의 핵심 고민 중 하나다. ‘스마트하고 성실하다’는 전통적 기준이 있지만 “두 기준만 충족하면 회사가 원하는 인재라는 얘기냐”라는 반문에 부닥치게 된다. 설령 이 기준으로 직원을 뽑는다 해도 스마트와 성실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선발의 구체적 기준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신현만의 인재경영

기업마다 직원을 뽑는 기준에 차이가 있고 시대마다 선발기준은 유행처럼 바뀌어 왔다. 어떤 기업은 학력이나 전문지식을 중시하는 데 반해 다른 기업은 열정이나 호기심·도전정신 같은 태도를 중시한다. 2000년 이전만 해도 조직 적응력이나 협업 능력, 장기 근속 같은 것을 많이 따졌지만 최근에는 창의성이나 호기심 같은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또 하나의 강력한 인재 선발 기준이 등장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을 즐기는지’ 따져 보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직장인은 일(work)과 삶(life)을 분리하면서 둘 사이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해 왔다. 일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삶을 등한시하는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이처럼 비정상인 취급을 받았던 ‘일중독자(workaholic)’를 재평가하게 만든 것은 이들의 강한 성취동기다. 업무 몰입도가 높아 탁월한 성과를 내는 이들은 기업의 주요 관심 대상인데, 영입과 유지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들은 보상이 아니라 일하는 과정에서 맛보는 재미와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 때문에 일에 빠져든다.

헤드헌팅 회사가 관심을 갖고 있는 뛰어난 인재 중에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많은 연봉과 좋은 근무조건이 아니라 일의 재미와 성취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런던비즈니스스쿨(LBS)에서 MBA 과정을 마친 이모(31)씨는 이런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올 초 대형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인터넷 쇼핑몰 회사로 옮겼다. 가족과 친구 등 주위 사람이 모두 말렸지만 그는 “재미없는 일을 계속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MBA 과정을 마친 뒤 전자회사에서 신규 사업 기획을 주도하면서 일에 빠져 지내던 그였지만, 회사가 그를 승진시켜 경영지원 부서로 배치하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그는 요즈음 인터넷 쇼핑 분야의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일에 몰두해 있다. 이씨가 다니던 전자회사의 인사 담당 간부는 “신입사원의 3분의 1 정도가 3년 안에 회사를 떠나는데, 핵심 이유는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에겐 대기업 직원만이 누릴 수 있는 많은 연봉과 좋은 근무환경, 체계적인 교육훈련 시스템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일과 삶을 구분하지 않고 일 자체에 흥미를 느껴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79년 이후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에서 많은데, 이들은 기업의 채용 전략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요즈음 한국의 주요 대기업은 적성검사를 중시한다. 업무나 조직문화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성과가 부진하고 쉽게 이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또 ‘역량면접(Competency Based Interview)’을 주된 인터뷰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면접은 과거 행동으로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데, 특정 상황에서 취한 후보자의 대응방식을 토대로 행동 패턴과 역량을 파악한다. 따라서 면접의 초점은 후보자의 지식이나 의견보다는 ‘과거의 특정 상황에서, 무슨 행동을, 왜 했는지’에 맞춰진다. 면접관들은 후보자의 행동방식을 토대로 일에 대한 그의 관점을 판단한다. 일중독자이면서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일 자체를 즐기는 직원을 뽑기 위해서다.

기업들은 특히 직원의 이탈을 막는 방법으로 휴가나 연봉을 많이 주기보다는 성취와 보람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도전적 과제를 부여하고 책임과 권한을 대폭 이양해 성취동기를 자극하는 것은 대표적인 밀레니엄 세대의 인재 유지 방법이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 회사 모니터그룹은 ‘21세기식 일하기:고정관념을 버려라’라는 보고서에서 ‘21세기식 일하기 6대 트렌드’로 ▶직업은 사라지고 업무만 남는다 ▶일과 삶의 균형에서 통합으로 ▶네트워크를 갖춘 제너럴리스트의 시대 등을 제시했다. 기업들은 그동안 ‘특정 분야의 지식을 갖고 있는 독립적 스페셜리스트로,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직원’을 높게 평가했다면 이제는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춘 제너널리스트로, 일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직원’에게 점수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논어의 옹야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이다.

회사에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라 하더라도 일을 좋아하는 직원을 이길 수 없고, 아무리 일을 좋아하는 직원이라 하더라도 일을 즐겨 하는 직원을 따라갈 수 없는 법이다. 기업이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일을 즐기는 사람을 뽑으려고 애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천 년 전에 동양의 대사상가가 역설한 인재관이 21세기 한국 대기업들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셈인데, 일을 즐기는 직원을 뽑는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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