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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고비처 '편법 기소권'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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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열린우리당과 부패방지위원회가 당정 협의를 통해 정부가 설립을 추진 중인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에 현직 검사를 파견토록 해 기소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지난달 29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반부패기관협의회에선 기소권을 주지 않기로 의견을 모아놓고선 불과 며칠 만에 이를 뒤집어버렸으니 정부의 속내를 알 수 없다.

고비처가 파견 검사를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기소권 등 검사의 권한은 검사 개인이 아닌 검찰청에 소속돼 업무를 수행하는 검사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이나 경제부처 등에 파견된 검사들에게 기소권을 주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또 기소는 관할 지방검찰청 소속 검사가 하도록 법원조직법.검찰청법 등에 규정돼 있다. 이로 인해 고비처 파견 검사를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직무대리 발령을 내 기소권을 행사토록 한다면 편법일 뿐이다.

기소권까지 갖는 막강한 수사기관을 대통령 직속기관인 부방위 산하에 두겠다고 고집해선 안 된다. 자칫하면 입법.행정.사법부를 겨누는 대통령의 칼이 될 것이란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국정감사나 고비처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만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일부 여당 의원이 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에 반발하듯 혹시라도 '검찰 길들이기' 차원에서 고비처 신설을 밀어붙여서도 안 될 일이다.

거듭 지적했듯이 고비처가 '옥상옥'이나 '제2의 사직동팀'이 돼선 안 된다. 검찰 권한에 견제가 필요하다면 감찰 기능을 강화.효율화함으로써 검찰권의 남용이 없도록 하면 된다. 많은 수사 전문가로 이뤄진 검찰 조직이 있는데 왜 새 수사기구를 만들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