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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례 통해 본 주주대표 소송 문제…기업 공격경영 '옛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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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차기 정부가 소액주주 권익 보호와 경영권 전횡을 막기 위해 주주대표 소송관련 법률 개정을 서두르는 가운데 선진국들은 거꾸로 소송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법 개정을 검토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은 인지 (印紙) 대금 8천2백엔 (약 10만원) 만 내면 어떤 주주라도 대표 소송을 낼 수 있도록 지난 93년 상법을 개정했다.

'글로벌 스탠더드' 에 맞춘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지난해 6월말 현재 주주대표 소송 계류건수가 3백20건 (92년말 현재 31건)에 이르고 손해배상 요구액도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하게 되자 고민에 빠져 있다.

주주대표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해당 임원은 배상액을 고스란히 개인 재산으로 물어줘야 한다.

회사에서 돈을 대주면 '회사이익 불법공여' 혐의로 또 다른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96년6월 12억5천만엔의 사상 최고액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항공전자공업의 해당 임원은 퇴직금.주택은 물론 자녀 학비까지 차압당하는 등 졸지에 '알거지' 가 됐다.

“회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는 하소연은 먹혀들지 않았다.

주주대표 소송의 가공할 파괴력을 실감한 임원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서면서 일본 손해보험사의 '중역배상 책임보험' 은 3년만에 계약건수가 2.3배나 늘어났다.

또 일본 기업체의 임원회의에서 활발한 토론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소송이 제기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모든 회의내용이 녹음돼 그야말로 '입조심' 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분야가 아닌 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절대 꺼내지 않는게 불문율로 굳어지고 있다.

자칫 큰 손실을 초래할 경우 책임을 몽땅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게이단렌 (經團連) 은 최근 사외감사 도입등 회계감사 제도를 강화하되 주주대표 소송요건을 강화해 소송 남발을 막아 달라는 긴급건의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밖에 소송에 걸린 임원에 대해 회사가 소송비용등을 지원하거나 회사 정관에 책임범위 등을 명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최근 변호사들이 '성공 보수' 를 조건으로 거액의 주주대표 소송을 잇따라 제기해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법률 개정을 의회에 요청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 (SEC) 도 “현행 법은 문제가 많다” 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과 미.영국 법원은 주주소송의 남발을 막기 위해 '악의' 가 있는 원고에 대해선 거액의 담보금 제출을 요구하는 추세다.

또 판사들에게 전문교육을 시키는 한편, 판결에 신중을 기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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