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귀 만들어주는 희귀한 ‘예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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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과 의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 고려대 안암병원 성형외과 박철 교수는 ‘귀 성형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브렌트 박사, 일본의 나카다 박사 등과 더불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귀 성형 명의다. 그가 개발해 학회에서 인정받은 귀 성형수술법만 15가지. 세계 무대에서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은 그는 성형외과 학술지(Annal of Plastic Surgery)의 논문심사 위원이기도 하다. 그가 명의로, 학자로 성공한 것은 ‘귀 없는 아이들에게 귀를 선사하는 산타클로스가 되겠다’는 집념과 타고난 예술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룬 덕분이다.

3개의 갈비뼈 끝자락에 붙어 있는 물렁뼈(연골). 박 교수는 바로 이 연골을 재료로 깎고 다듬어 인공 귀를 만든 뒤 다시 미세한 혈관을 연결해 예쁘게 안착시키는 일을 한다.

“어린아이가 뼈를 깎는 고통의 결과로 얻은 연골을 피부의 결을 따라가듯, 조심조심 다루면서 귀 모양을 만드는 일은 천상 예술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박철 교수는 자신의 분야에 대한 자부심을 이렇게 표현한다.

‘새로운 사람’ 만드는 매력에 빠져

어릴 때 박 교수의 꿈은 ‘창조적인 예술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엔 건축가를 희망했다. 하지만 입학원서를 쓸 무렵 “죽을 환자를 잘 치료해 살리는 의사의 길도 창조적인 일”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다. 전공 분야를 물색하던 본과 3학년 때 그는 ‘재건성형수술’ 강의를 듣는 순간 ‘바로 내가 찾던 길’이란 생각을 했다.

“1970년대만 해도 의대생 대부분이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 등 소위 말하는 메이저(major) 과에 관심을 가졌어요. 성형외과는 대표적인 마이너(minor)과였죠. 1인당 국민소득이 몇백 달러 하던 시절이라 미용 성형 수술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도 드물었고요. 하지만 저는 화상 환자의 피부를 이식하고 뼈를 깎고 다듬어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시키는 성형외과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어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의술로 생각됐거든요.”

1984년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전임교수로 발령받은 박 교수가 처음 관심을 뒀던 분야는 화상이나 외상으로 손상된 팔·다리·피부 등의 작은 혈관을 현미경을 보면서 연결해주는 미세혈관수술이었다.

그러다 귀 성형에 몰두할 계기가 생겼다. 1987년 사고로 1㎜ 정도의 살과 혈관만 붙어있을 정도로 손상된 환자의 귀를 현미경 수술로 복원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엔 피부가 적어도 1㎝는 붙어 있어야 피부와 혈관을 살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1㎜의 작은 혈관과 피부를 서로 연결했는데 기적처럼 성공한 거예요. 연결한 피부가 살아난 걸 확인한 순간 ‘귀 성형을 위해 평생을 바치라는 신의 계시’로 느꼈습니다.”

당시 박 교수는 가족과 떨어져 연세대 원주의대 부속병원에 파견 교수로 근무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었던 셈인데 실제 박 교수는 병원 근무가 끝난 뒤 매일 새벽 1, 2시까지 시체의 귀를 해부하면서 귀의 혈관 분포를 연구했다.

“해부학은 귀의 일반적인 구조를 알려주지요. 하지만 미세 성형수술에 필요한 다양한 귀 모양과 혈관 분포, 연골의 구조 등 세세한 부분은 집도 의사가 직접 사망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체를 해부하면서 알아내야 합니다.”

3년간 이 과정을 통해 다양한 귀의 구조와 혈관 분포 등을 독학한 박 교수는 1989년 도미해 UCSF 성형외과에서 2년간 귀 성형의 창시자인 브렌트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한 박 교수는 강남세브란스병원(옛 영동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선천적으로 귀 없이 출생하는 소이증· 무이증 환자, 찌그러지고 수축된 귀, 외상이나 화상으로 손상된 귀 등을 재건하는 일에 매진했다. 지금까지 박 교수가 집도한 귀 수술은 5000번 이상, 새로운 귀를 선물받은 환자도 2200명이 넘는다.

귀 수술은 한 번에 해결되는 경우가 드물다. 무이증(소이증)의 경우 갈비뼈의 연골을 떼서 귀를 피부 밑에 심는 1차 수술, 6개월 뒤 심은 귀를 제 위치로 올려주는 2차 수술, 이후 또다시 귀 모양을 다듬는 3차 수술 등 세 번의 수술이 필요하다.

귀 뒤 피부 늘린 뒤 수술하는 법 개발

“수술을 하다 보면 불현듯 새로운 수술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박 교수. 그가 고안한 수술법 중 귀 뒤 피부를 물주머니로 늘린 뒤 사용하는 수술법은 현재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수술 과정이 복잡한 데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귀 성형 명의이다 보니 박 교수에게 수술을 받기 위해선 4~5년씩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의 환자들을 수술하는 박 교수는 잘 웃는 ‘스마일 의사’다. “수술 직후 통증이 심한 상황에서도 드레싱을 하면서 거울로 새로 생겨난 양쪽 귀를 보여주면 아이들이 ‘야~!’ 하면서 큰 소리로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쳐요. 요즘은 몰래 휴대전화를 준비했다가 사진을 찍기도 하죠. 이 아이들을 떠올리면 힘들 때에도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박 교수의 표정에선 권위에 찬 명의의 모습보다는 천진한 어린이의 얼굴이 연상된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강정현 기자

박철 교수 프로필

1949년생

1976년: 연세대 의대 졸업

1976~1981년: 세브란스병원 수련의 및 성형외과 전공의

1984~2003년: 연세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

1989~1991년: 미국 UCSF의대 교환교수

2003~2006년: 박철 귀성형전문 성형외과 원장

2006년~현재: 고려대 안암병원 성형외과 교수

재건 성형외과 최고 권위지인 『재건성형외과』에 ‘Arterial supply of the anterior ear’ 등 SCI 논문만 35편 기고


신용삼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외국 전문가들 누구나 인정하는 분이죠”

“전문가는 누구나 한 우물을 파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남들도 많이 선택하는 길을 걷다가 성공하고 싶어해요. 나 홀로 가는 길은 왠지 불안해서 피하고 싶기 때문이죠. 그런데 박철 교수님은 화려한 분야로 꼽히는 성형외과를 전공하면서 유독 “귀 없는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며 외롭게 귀 재건성형에 몰두해 성공한 분이에요.” 박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신용삼(사진) 교수의 설명이다.

신 교수는 박 교수를 대면한 적이 없다. 하지만 ‘국내 유일’ ‘최고’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박 교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임상의학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국제적인 권위지에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고 또 외국의 전문가들도 이름만 딱 들으면 ‘아, 그 사람?’하고 알 정도로 인정받는 의학자는 아직 드문 게 사실입니다. 박 교수님은 귀성형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알고 인정하는 분이에요. 한국인이 특히 수술 분야에서 국제적인 학술지의 심사위원(Review Editor)으로 활동하기는 정말 힘들거든요. 수술을 전공하는 한국인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 있나요?” 신 교수는 박 교수야말로 명의 중의 명의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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