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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채널 ‘사이먼, 제발 그만두진 말아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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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06면

‘아메리칸 아이돌’은 미국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는 TV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정작 재미는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보다 그들을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의 갑론을박이다. 그중에서도 사이먼 코웰(사진)은 출연자들에게 거침없이 독설을 날리기로 유명하다.

김수경의 시시콜콜 미국문화

상기된 얼굴로 “평생 가수를 꿈꿔 왔다”고 말하는 출연자에게 “앞으로 다시는 노래를 하지 말라”고 충고하거나, 이에 반발하기라도 하면 “그게 어쩔 수 없는 업계의 이치”라고 태연하게 받아넘긴다. “지금까지 들어 본 노래 중 최악”이라는 논평은 점잖은 축에 속하고 “노래 선생님을 사기죄로 고소하라”는 악평도 서슴지 않는다.

사이먼의 독설로부터 출연자를 지켜 주는 것은 언제나 폴라 압둘의 몫이다. 대놓고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성격 탓에 아무리 음치가 출연해도 좋은 말로 돌려보낸다. 그렇게 ‘새가슴’인 압둘에게 코웰의 독설이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 그녀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코웰 때문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일곱 번”이라고 말했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던 두 사람이 다음 시즌부터는 출연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현재 방영 중인 시즌 8을 끝으로 계약이 종료되기 때문. 영국 프로 브리튼스 갓 탤런트’ 제작과 음반 기획 등. 영ㆍ미를 오가며 활동중인 코웰은 육체적 피로를 호소하며 재계약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압둘 역시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재계약 연장에 실패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Fox 채널이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Fox 채널의 ‘현금인출기’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기 때문.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트폴리오’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1년에 64억 달러에 달한다.

두 사람, 특히 코웰이 빠지면 시청률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이들의 하차 소식을 둘러싸고 인터넷 매체들이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폴라 압둘이 없다면 모를까 사이먼 코웰이 없는 ‘아메리칸 아이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그의 독설이 인기를 모으는 까닭은 그의 논평이 꽤나 정확하기 때문이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도 가만히 따져 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가령 그가 출연자에게 “당신은 거울도 안 보느냐”고 얘기하면 “어떻게 저렇게 심한 말을 할까”라는 반감보다 “내가 봐도 저 얼굴로는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쇼비즈니스 세계의 냉정한 현실을 생각할 때 출연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헛된 희망보다 엄격한 진실이다. 그게 코웰의 말마따나 돈과 시간을 절약해 주는 길이다. 특히나 연예계의 화려한 겉모습에 이끌려 너도나도 연예인을 꿈꾸는 작금의 풍토에 그의 독설은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시청자 입장에서 폴라 압둘과 사이먼 코웰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사실 내 안에 살고 있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자각하게 된다. 우아하고 고상한 척하느라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소심하게 불평을 늘어놓는 일들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그렇게 억눌린 감정이 만들어 낸 현대인의 가학증을 코웰을 통해 대리 체험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메리칸 아이돌’의 인기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주옥 같은 독설을 들을 수 없다니, 벌써부터 서운한 마음이 앞선다.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스탠퍼드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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