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시 하양읍 무학산(해발 574m) 중턱.
우리 것을 지키고 연구하는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가 자리한 이곳에 최근 100년이 훨씬 지난 목조건물 한 채가 옮겨 세워졌다. 정자나 고택 같은 우아한 건축물이 아니다. 사람이 죽은 뒤 이승을 떠날 때 필요한 상여를 두는 상엿집(또는 곳집)이다.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를 이끄는 조원경(52·신학박사) 고문과 황영례(46·철학박사) 지부장 등이 2000만원을 주고 사들였다. 이 상엿집은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의 한 마을에 있었다. 수몰지역도 아닌데 마을 가운데 버티고 있어 개발의 장애물이 되자 주민들이 ‘흉물’을 처분한 것이다. 이전해 복원하는 데 트레일러와 대형 크레인이 동원됐다.
경북 경산시 하양읍 무학산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 터에 옮겨 세워진 상엿집 전경. [국학연구소 제공]
놀라운 것은 상엿집이 누각 형태로 화려하고 위엄을 갖춘 데다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엿집은 왼쪽 두 칸 마루와 오른쪽 한 칸이 창고 형태인 3칸 건물이다. 상량문에는 1891년 세 번째로 옮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건축 관계자들은 상엿집의 목재로 미뤄 300년쯤 된 것으로 추정한다.
조 고문 등이 상엿집을 옮긴 뒤 내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희귀자료들이 나왔다. 먼저 대형 상여를 올려놓고 32인이 멜 수 있는 7m60㎝ 방틀이 있었다. 방틀은 큰 것 7개, 작은 것 6개였다. 상여는 크기에 따라 8명, 16명, 24명, 32명이 메는데 상여꾼이 몇이냐에 따라 망자의 신분이나 가세를 추측할 수 있다. 장례에 쓰던 구슬픈 소리를 내는 종 등 각종 제구와 상여를 누가 멨는지 등을 적은 문건 등도 수십 점 발견됐다. 자천리 주민은 30년 전까지 상여를 멨다고 증언했다.
상엿집을 귀신집으로 여겨 금기시하는 문화가 이들 자료의 보존을 가능케 한 것이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상엿집은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의 1동(경북도 문화재자료 제384호)이 있다.
조 고문은 “자칫 사라질 뻔한 죽음의 문화를 용케도 지켜낸 게 뿌듯하다”며 “삶의 문화만큼 소중한 게 죽음의 문화여서 상엿집을 사들였다”고 말했다. 황 지부장은 “경산시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며 “7월쯤 상엿집 복원의 의미와 보존 방향 등을 놓고 세미나를 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남아 있는 제구를 이용해 실제로 행상을 꾸려 보고 전통 장례문화를 정리할 예정이다.
경산=송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