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슈·정치 사상·유머·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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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정치 사상·유머·문화…

'세상과 맞짱' 티셔츠의 도발

한 사람이 걸어간다. 달랑 티셔츠 하나 걸쳤을 뿐인 그에게 눈길이 간다.
얼굴이나 몸매가 아니다.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다. ‘Nobody care what your T-shirt says.’네 티셔츠에 뭐라고 쓰여 있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왠지 아우라가 느껴지면서 아이로니컬하게도 신경이 쓰인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보자. 1980년대 록 뮤지션들은 사회적 이슈가 담긴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섰고,디자이너들 역시 티셔츠에 특별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이쯤 되면 티셔츠는 더 이상 패션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시대를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슬로건 티셔츠의 도발적인 매력
 영국 디자이너 캐서린 햄넷은 탄도 미사일 개발을 반대하는 티셔츠를 입고 마가렛 대처 총리를 만나는 담대함을 보였다. 사회적 메시지를 티셔츠에 담기 시작한 원조 디자이너라 할 수 있다. 그는 이후 반항하는 젊음(Revolting Youth)이라 쓰인 티셔츠를 만들어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의 소중함을 일깨웠다.또 최근엔 브랜드 H&M과 함께 에이즈 캠페인 티셔츠를 입고 모델로 직접 서기도 했다.
 
프로덕트 레드 프로젝트는 이미 잘 알려져있다. 아일랜드 록그룹 U2의 리드싱어 보노가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로 모토로라·애플·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많은 브랜드가 참여했고, 그중 엠포리오 아르마니와 GAP에서 빨간색 티셔츠를 선보였다.마크 제이콥스는 늘어나는 피부암 환자를 위해 누드 티셔츠를 내놓은 적 있고, 비비안웨스트우드는 테러법 반대 등의 정치사상을 티셔츠에 담아 시즌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키곤 했다.

아티스트의 캔버스로 진화하다
요즘 티셔츠는 단순한 옷이라기보다 아티스트의 캔버스다. 동시에 사회공익적 메시지를 담고자하는 기업간 콜라보레이션(협업)의구심점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무지티셔츠는 백지와 같습니다. 어떤 프린트가 들어가느냐, 어떤 네크라인으로 제작 되느냐에 따라 수만 가지 얼굴로 변할 수 있죠.” 얼마 전 UT전시회를 연 일본의 패션브랜드 유니클로 마케팅 담당 김태우 매니저의 말이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UT 전시는 협업을 통해 다양한 문화 콘텐트가 녹아든 300여종의 티셔츠를 선보이는 유니클로의 티셔츠 프로젝트다. 순수미술의 김한나, 현대미술의 YP,가수 호란 등의 국내 작가와 키스 헤링, 바스키아 등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미국의 레트로 기업, 일본 기업 등이 손을 잡아 가히 메가 컬처로 불릴 만큼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물론 중심은 티셔츠다. 티셔츠를 매개로 유니클로 안에서도 UT만의 문화를 추구하겠다는 취지다.
 
아예 그래픽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만 이뤄진 온라인 숍도 있다. 컬쳐 트위스트(www.culturetwist.com)다. 계약을 통해 맺어진 전세계 200여명의 그래픽 아티스트들의 작품이모여 만들어낸 브랜드다. 무한대에 가까운 다양한 디자인 가치관의 공유가 컨셉트다. 김정민 기획이사는 “컬쳐 트위스트만의 티셔츠 문화를 구축한 뒤 머그컵·라이터 등 다양한 아이템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이슈에 맞춘 콜라보레이션 티셔츠도 화려하다. 지오다노는 유머를 모티프로 ‘Cheer Up 캠페인’을 시작했고,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선도해온 쌈지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치료한다’를 주제로 캡슐 티셔츠 프
로젝트를 시행한다. 작가 100여명과 작업했다는 쌈지 마케팅팀의 이의선 팀장은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이 트렌드가 된 요즘, 멀리 내다 보고 지속적으로 캡슐 티셔츠 캠페인을 펼치려 한다”고 소개했다.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까딱하면 상업적인 성격이 두드러질 우려가 크다.
 
트렌드정보사 PFIN의 이현주 수석팀장은 문화예술을 표방하더라도 궁극의 목적은 결국 상업성을 띠기 마련이라고 꼬집는다. “예술의 순기능, 이를테면 사회의 매너리즘에 대한도전이나 새로운 가능성 제시 등 파워풀한움직임을 보기 힘들어졌죠. 예술계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대중들과 소통할 기회를 마련했다는 측면과 대중들의눈높이가 높아지고 까다로워졌다는 점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니클로 UT 전시에 참여한 현대미술 작가YP는 “실제로 기업들과 작업해보니 대부분 1회성 프로젝트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진아티스트들의 신선한 이미지를 단지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소비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는 그는 “지속적으로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며 같이 발전해 갈 수 있는 콜라보레이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프리미엄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
사진=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
모델=곽동원, 이성경 /
촬영 협조=유니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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