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우리말 바루기 3. '가래떡'과 '공비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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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어떤 명칭을 두고 하필이면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몇 번씩은 있을 것이다.

설날에 얇게 썰어 국을 끓여 먹는 가는 원통형의 떡을 가래떡이라고들 한다. 물론 떡의 모양을 염두에 두고 지은 명칭이겠지만 그 이름을 부를 때 예민한 이들은 떡 모양만 떠올리는 게 아니라 지저분한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음식 이름이라면 그것이 주는 이미지도 생각해야 할 텐데 못마땅하다.

또 식당에 가면 자주 나오는 반찬 중에 사람들이 흔히 '비듬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것은 바른 명칭이 아니다. 이 나물의 재료 이름은 '비듬'이 아니라 '비름'이다. 그러므로 제대로만 불러주면 기분 나쁜 '비듬나물'이 아니라 '비름나물'을 먹을 수 있다.

기소권을 줄 것인가로 논란 중인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처음 약칭은 '공비처'였다. 신문.방송에도 한동안 오르내렸다. 남북이 지금보다 날카롭게 대립했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이 이름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무장공비를 떠올리게 하는 공비처란 말인가.

관계자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던지 어느 날 약칭은 '고비처'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느낌이 생경하다. 이곳에 불려가는 사람들은 큰 고비에 처할 것이니 그 이름이 제격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리조사처'라고 부른다면 알아보기가 더 쉬울 것이다.

정부 부처 명칭을 지을 때도 국민의 정서와 말의 느낌을 헤아려 달라고 요구한다면 아직은 한가한 소리가 될까?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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