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곳 수용자 1만8000명, 서울대병원서 화상 진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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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12면

4월 27일 서울대병원에서 피부과 변희진 교수가 심한 발진성 여드름 증세를 호소한 광주교도소의 한 수용자를 상대로 원격진료 시연을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교도소와 구치소 등 교정시설 수용자에 대한 원격진료는 2005년부터 부분적으로 이미 시행돼 왔다. 그해 10월 안양교도소는 안양메트로병원과 협약을 맺고 원격진료를 처음 시작했다. 이후 47개 전국 교정시설 가운데 8곳에서 원격진료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구치소(안양샘병원), 춘천교도소(춘천성심병원), 청송 제1교도소(성소병원), 광주교도소(화순전남대병원), 대전교도소(대전선병원), 강릉교도소(강릉동인병원), 순천교도소(순천의료원) 등이다. 원격진료 건수도 2005년 135건에서 2006년 1351건, 2007년 2562건, 2008년 3009건으로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곧 4곳이 추가돼 모두 12곳에서 원격진료가 가능해진다.

7월부터 교정시설 첨단 의료 실험

 법무부와 서울대병원 간의 협약은 원격진료를 모든 교정시설로 확대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의미가 있다. 서울대병원 측은 12개 교정시설 1만8000여 명의 수용자들에게 7월부터 원격화상진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각 시설의 연계 병원들과 환자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며 원격진료 시스템의 중앙센터(통제소) 역할을 할 예정이다. 필요한 장비와 진료비는 모두 법무부가 부담한다. 법무부는 약 70억원의 관련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2011년께 원격진료 시스템을 전국 47개 모든 교정시설로 확대할 계획이다.
 
신창원 “디스크 치료 제때 못 받아” 소송도
정부가 교정시설에 원격진료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교정기관의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인한 수용자들의 인권침해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체 5만여 명의 교정시설 수용자 중 크고 작은 질환이 있다고 진단받은 사람은 9200여 명(2008년 말 기준)이다.

 그러나 현재 교정기관에 소속된 의료진은 161명(공보의 72명 포함)으로 기관당 3명 정도다. 의료시설도 대부분 낡았다. 외부 진료는 의료기관 이송 도중 탈주 시도 가능성 때문에 제약이 많다. 수용자 1인당 최소한 3명의 계호직원이 함께 움직여야 하고, 병원도 이들에 대한 진료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수용자들은 적절한 치료를 기대하기 힘들다.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희대의 탈주범’으로 불리는 신창원(42)씨가 국가를 상대로 2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이 한 예다.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인 신씨는 지난해 2월 “교도소에서 진료 요구를 묵살하고 허리 디스크 치료를 제때 해 주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며 우편으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소장에서 “재소자에 대한 교도소의 인권침해를 개선하기 위해 소송을 낸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을 담당한 대구지법 측은 지난해 12월 31일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 신씨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양측 모두 판결에 불복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 밖에 교정시설 수용자들의 의료문제 관련 고소·고발은 2006년 114건에서 2007년 208건, 2008년 288건 등 계속 증가하고 있다.
 
원격진료 절반이 정신병 · 우울증 많아
교정시설의 의료환경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2005년부터 수용자 전원이 매년 1회씩 20~30개 항목의 건강검진을 받는다. 일반 직장인이 받는 수준이다. 지난해 안양교도소에 이어 올해는 대전교도소가 신부전환자 등을 위한 혈액투석 시스템을 갖췄다. 300병상 종합병원급의 의료전문 교도소 신축도 추진 중이다. 이런 노력도 수용자들의 수요를 따라가기엔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부분적으로 도입한 원격진료가 효과를 보고 있다.

 특히 정신과 질환을 앓는 수용자 진료에 효과를 보고 있다. 2008년 원격진료 총 3009건 가운데 정신과 진료가 1755건(58%)이었다. 대전교도소 수용자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신과 원격진료를 하고 있는 대전선병원의 김영돈 원장은 “정신과 질환은 대부분 대화에 의해 진료가 이뤄지기 때문에 다른 질환들보다 화상진료 시스템에 훨씬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수감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증을 앓는 수용자가 상당히 많다”며 “이들에게 항우울제 등을 처방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정신과 전문의가 있는 교정시설은 진주교도소뿐이다.

 필름 스캐너를 통해 원격 X선 영상 판독 등이 가능한 정형외과도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편이다. 2008년에만 448건의 진료가 이뤄졌다. 확대경 화상을 통한 피부과와 안과 진료, 청진 등을 통한 간단한 내과 진료도 이뤄지고 있다.

 원격진료 확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비용 문제다. 수용자들은 건강보험 납부 의무가 일시 정지돼 있어 진료비 전액을 모두 법무부 예탁금으로 처리한다. 지난해의 경우 인건비와 시설 투자비 외에 순수 진료비만 106억원이 들었다. 일부에선 “범죄자에게 그런 의료 서비스까지 해 줘야 하는가”라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서울대병원과의 협약식에서 ‘수용자들의 건강한 사회 복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원격진료 시스템은 김 장관이 주창해 온 ‘따뜻한 법치’의 한 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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