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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도 두려움도 사라질 때, 진짜를 본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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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14면

청안 스님 1966년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에 숭산 스님을 만나 제자가 됐다. 한국의 화계사·해인사 등에서 수행했다. 헝가리·폴란드·러시아·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지를 돌며 선(禪)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꽃과 벌』『마음거울』등이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푸른 눈의 납자(衲子·스님을 일컫는 말), 청안(淸眼ㆍ43) 스님을 만났다. 최근 자신의 법문을 모아 『마음거울』(김영사)이란 책을 낸 그는 숭산 스님의 제자다. 지금은 조국 헝가리에 ‘원광사’란 사찰을 세우며 선(禪)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간만에 한국을 찾은 그에게 ‘가슴에 꽂고 사는 딱 한 구절’을 물었다. 그는 영어로 “왓 아~유?(What are you?)”라고 답했다. 당신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나는 무엇인가’란 화두였다. 그 화두의 끝자락을 붙들고 질문을 던졌다.

영혼을 울린 한 구절-헝가리 원광사 청안 스님

-이 물음이 왜 중요한가.
“우리가 생각 이전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는 물음이니까.”

-왜 거기에 도달해야 하나.
“우리의 생각은 맑지 않다. 선과 악, 높고 낮음 등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다. 그걸 통해 잘못된 정체성이 생기고. 우리는 자신을 그것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생각 이전의 마음은 ‘클리어 마인드(Clear mindㆍ물들지 않는 마음)’다. 거기서 내가 무엇인지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잘못된 정체성을 가지게 되나.
“습관 때문이다. 이 습관은 가정·교육·사회, 그리고 자신의 업(業ㆍ카르마) 등 여러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그 습관과 업의 파워가 너무나 강하다고 여긴다. 깨달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당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면 불가능하고, 당신이 가능하다고 여기면 가능하다. 업도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안 스님은 ‘나는 무엇인가’란 화두를 처음 접했을 당시를 얘기했다. “그 물음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나는 물음에 답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답이 계속 왔다 갔다 하더라. 그러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스님은 답 찾는 걸 포기했다. 대신 물음을 바꾸었다. ‘이 물음이 어디서 왔나’. 그걸 묻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생각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수행이 시작되더라. 거기가 진정한 출발점(Real starting point)이더라.”

-언제까지 그걸 물어야 하나.
“과거ㆍ현재ㆍ미래도 사라지고, 나라는 아상(我相)이 사라질 때까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답이 나온다. 나중에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이 화두마저 사라진다.”

-그 화두마저 사라지면 어찌 되나.
“그럼 아무런 희망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가게 된다.”

-희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자리. 사람들은 그곳을 두려워한다.
“희망도 환상이고, 두려움도 환상이다. 그러니 희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으면 이 순간의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된다. 순간순간 찰나찰나의 마음을 보라. 이 물들지 않는 마음이 진짜다. 이게 진짜 기능(Real function)이고, 진짜 관계(Real relationship)이고, 진짜 상황(Real situation)이다.”

-이런 수행의 길에서 스승(젠마스터ㆍ선지식)의 역할은 뭔가.
“스승은 내비게이션이자 에너지다. 수행의 방향을 일깨워 주는 방향타이고, 당신의 에너지를 일깨워 주는 에너지다.”

-그렇게 본래 마음을 찾으면 뭘 할 수 있나.
“더 적은 실수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된다. 단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내가 드디어 깨달았어’라고 하는 건 엄청난 실수다. 그건 마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다. 임제 선사는 ‘깨달았다’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똥을 뒤집어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사람들의 무엇을 돕는 건가.
“모든 것에 대해 도울 수 있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왜 ‘모든 것’에 대해 돕는 것이 가능한가.
“어떠한 것에도 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것에도 닿을 수 있게 된다.”
헝가리의 원광사에는 현재 12개 국가에서 온 42명이 수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국제 선원’이다. “즐거운 인터뷰”라며 빙그레 웃는 청안 스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순간, 당신은 어디에 있나.
“나는 이 방 안에, 이 테이블 앞에서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 청안 스님의 메시지는 명쾌했다. 있는 그대로를 보라, 그게 바로 선(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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