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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재밌게 읽는 법 가르쳐드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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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할리우드 스타 헨리 폰다와 캐서린 헵번 주연의 영화 ‘황금 연못’ 아시죠. 호숫가에 사는 노부부 이야기죠. 기억력이 쇠퇴한 할아버지를 위해 할머니는 자꾸 움직이고 바깥 활동을 하라고 권유하죠. 그러던 중 사이가 좋지 않았던 딸이 사귀는 남자의 아들을 별장에 데려오고, 할아버지와 소년은 함께 낚시를 하면서 가까워져요. 이를 떠올리면서 수업 제목을 ‘책 읽는 황금 마차’로 정했습니다.”

박옥순씨가 동화 구연 시범을 보이고 있다.


동화구연가 박옥순(48)씨가 자신이 강의하는 구연동화 수업의 이름을 정한 사연이다. 박씨는 다음달 13일부터 7월 29일까지 수요일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건강가정지원센터(3412-2223)에서 60세 이상 할머니·할아버지를 대상으로 구연동화 수업을 한다.

짧은 동화나 동시를 재미있게 읽는 법을 배운 노인들이 손자들에게는 물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치매어르신센터 등에서 동화 구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수업료는 없고, 선착순 30명만 받는다.

대학에서 유아교육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박씨는 20여 년간 경기도 군포와 안산의 노인복지회관, 자원봉사센터 등에서 아동, 장애아 및 노인을 대상으로 동화 구연을 가르쳐왔다. 무조건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동작과 연결시켜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수업 방식이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기억력이 따라줄까’라며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하죠. 몇 번 반복 하면 금방 따라오세요. 60대는 3번 정도, 70대는 5번, 80대도 10번 정도 반복하면 다 외우시더라고요.”

간혹 쑥스러워하는 어르신도 있지만 그의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에 대개는 마음을 연다.

“한번은 손자와 같이 오신 할머니가 ‘못 하겠다’며 손사래를 치시더라고요. 동물 목소리도 내고 소리를 높였다 낮췄다 해야 하는데 사실 좀 쑥스럽지요. 그런데 제가 ‘할머니. 한 번만 해주시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내일은 꼭 해주세요’라고 부탁 드렸어요. 다음날 할머니가 오시더니 ‘선생님이 그렇게 원하니 해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박씨는 자폐증 아들을 두고 있는 장애우 엄마다. 아들을 위해 한국언어치료학회에서 언어치료를 공부했고, 언어치료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군포시 장애우 청소년 봉사단체 ‘윙2002’(비영리민간단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장애아와 어르신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정서가 맑고, 촉각을 사용해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아주면 잊었던 과거도 쉽게 기억해낸다는 점이죠.”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얼굴은 한층 밝아졌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누군가 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르신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그분들이 긴 노년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시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글·사진=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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