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리해고 다툴시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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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실금융기관의 정리해고 입법을 둘러싼 진통이 깊어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오는 15일 열릴 임시국회에서 이의 처리를 반대하며 강행할 경우 노사정 (勞使政) 협의회 참석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파업 등 실력행사에 들어가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명확한 입법협조를 유보하고 있어 사태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부실금융기관뿐 아니라 전 산업에 대한 정리해고제 도입은 국제통화기금 (IMF) 측과 약속한 사항일 뿐 아니라 기업의 구조조정과 감량경영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우리 자신의 절체절명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가 정리해고 자체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나오고 있는 점이다.

사실 노동계가 일터를 빼앗게 될 정리해고에 찬성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정리해고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부문도 고통을 분담해야 하며 정리해고 이후의 보완책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도 납득이 된다.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번 임시국회 이전에 노사정협의회를 구성해 경제주체간에 이런 문제에 대한 대타협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렇다고 지금 노동계의 주장을 수용하기에는 우리의 처지가 너무나 다급하다.

본래 정리해고 입법은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키로 했던 사항이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넘기기 어려운 금융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부실 금융기관만이라도 우선 정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 금융기관 근로자의 정리해고를 앞당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에 1월국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가 정리해고를 끝까지 반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1, 2월 국회로 나눌 것 없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금융기관뿐 아니라 전 산업에 대한 정리해고를 일괄입법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단계를 나누어 순조롭게 처리될 수 있다면야 좋지만 어차피 큰 파동이 불가피하다면 단번에 처리해 사회적 부담을 단기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본다.

한나라당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해 정리해고를 도입하려다 야당과 노조의 반대로 노동법 파동을 겪으며 좌절된 데 대해 앙금이 남았겠지만 지금은 과거에 연연해 뒷다리를 잡을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정리해고 입법에 힘을 합치는 것이 집권경험이 있는 책임있는 다수당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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