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일성 사후 10년] 上. 체제와 경제…북한 두 토끼 몰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북한 지방의 한 인민학교 교정에서 열린 추모행사. [중앙포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사망(1994년 7월 8일) 이후 식량난.북핵 문제 등 내우외환 속에서도 체제를 안정시키면서 나름대로 변화를 모색해 왔다. 이 기간에 '고난의 행군''남북 정상회담''경제개혁' 등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들이 이어졌다. 8일의 김정일 정권 10주년을 계기로 북한 체제의 변화와 과제를 짚어 본다. [편집자]

"북에 시장이 들어섰으니 시장에 경제를 붙여 시장경제로 부르자."(김광림 남측 대표단장)

"그건 안 된다. (북의 변화는) '시장 사회주의'다."(최영건 북측 대표단장)

지난해 11월 6일 평양에서 열린 제7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남북 대표단장이 주고받은 대화의 한 대목이다. '시장'과 '사회주의'의 결합을 의미하는 '시장 사회주의'란 용어를 북의 고위관료가 공개적으로 사용한 점이 이채롭다. 북한에서는 '실리 사회주의'란 말을 더 즐겨 쓴다. '실리 사회주의'란 용어는 체제안정과 경제개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김정일 정권 10년을 압축하는 키워드인 셈이다. 그러나 10년 내내 지속돼온 핵문제 논란으로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경제난 해결도 잘 진척되지 않고 있다.

◇'나에게 변화를 바라지 마라'=김일성 사망 후 '북한 붕괴론'이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대세를 이뤘다. 북한 사회는 식량난.에너지난 등과 계속된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등 최악의 체제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대외 교역액만 봐도 1990년 41억7000만달러에서 94년 21억달러로 반토막이 됐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훈통치'를 표방하며 김일성 전 주석의 노선을 계승하고, 군대를 앞세워 북한식 '사회주의 고수'에 나섰다. 95년 1월에 시작됐다는 선군(先軍)정치는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군부를 확고히 장악해 체제의 안정을 꾀하려는 '김정일 시대'를 특징짓는 정치방식이다. 지난 10년간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도 절반 이상이 군 관련 활동으로 채워졌다.

김일성이 사망한 지 3년이 지난 97년 10월 김 위원장은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했다. 다음해 최고인민회의에서 주석제를 폐지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명실상부한 '후대 수령'으로 자리잡았다.

이어 지난해 8월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해 김일성 사망 이후 지속된 비상체제에서 벗어났다.

◇실리추구와 정상외교=체제위기를 넘긴 김 위원장은 98년 사상.군사.경제 강국 건설을 목표로 한 '강성대국론'을 표방하며 체제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2000년의 남북 정상회담과 2001년 1월 김 위원장의 '신사고'발언이 분수령이었다. 이때부터 북한은 대남.대외관계 개선에 힘을 쏟으면서 내부적으로 경제개혁 조치를 취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이 직접 은둔에서 벗어나 중국.러시아.유럽연합(EU).일본.인도네시아와 정상외교에 나섰고, 6자회담을 수용해 북핵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실리주의'에 입각해 2002년 7월 임금.물가 등 가격체계의 현실화, 배급제의 단계적 축소 등 시장경제적 요소가 가미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시행함으로써 경제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나선경제무역지대에 이어 금강산.개성.신의주 등을 특구로 지정해 해외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정영철 주임연구원은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 사회주의체제 고수와 개혁.개방이라는 이중전략을 구사해 왔으며, 이 노선은 김정일 정권이 유지되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