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충무공 가문의 內亂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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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009년 3월30일 오전 10시. 하늘이 울먹울먹하면서 몇 방울 비가 떨어진다. 꽃샘바람이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듯 으슬으슬 춥다. 대전지방법원 천안 2호 법정 입구 벽에 붙은 경매 물건 리스트에는 최순선(54) 씨 소유의 이순신 장군 옛집 부지 3필지 7만4,711㎡와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있는 산과 논 4필지 총 9만8,597㎡가 올라와 있다.

경매 넘어간 이순신 옛집터… 들여다보니‘종손’갈등 #홀로 남은 종가 며느리에 문중에서는 “여성호주제가 걱정” #문중 땅 놓고 7년 소송… 종부 자격 박탈로 관계 벼랑에 #포커스 4월 28일 탄신일 앞두고 영웅家의 비극

경매에 부쳐진 땅과 논의 주인인 최씨는 이순신 장군의 15대 종손의 아내(宗婦)이며, 채권자 김모 씨가 청구한 금액은 7억 원이었다. 이 경매 물건의 최저매각가(감정평가액)은 19억6,000만 원이었다. 최씨나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친회장 등 문중의 주요 관계자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이날 1차 경매에서는 아무도 응찰하지 않았다.

충무공이 살던 옛집의 땅이 법원 경매의 매물로 나오다니, 대체 이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조선 최고의 전쟁영웅이자 위인 1호로 손꼽히는 충무공의 집터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왜 아무도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일까? 법정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들 또한 먹장구름처럼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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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후 2시. 현충사 오른쪽 한편에 있는 충무공의 옛집에는 노인 일행 서넛이 자리를 뜨자 다시 적막해졌다. 충무정(忠武井·우물)을 지나 미음(ㅁ)자 집 앞에 서니 추운 뜨락에 백매화와 홍매화가 곱게 피었다.

매화는 조선 성리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빼어난 장수이면서도 유학자적 풍모를 잃지 않았던 충무공의 향기가 코끝에 감도는 듯 하다. 그러나 그 매화가 뿌리를 내린 땅이 지금 법원에 올라앉아 있으니, 꽃인들 이 봄은 봄이 아니다.

마당에 들어서면 서울에서 흔히 보는 사각 공간이 사방의 건물 안에 생겨나 있다. 원래 집이 이렇게 생겼던 것은 아니다. 안채는 그대로지만 사랑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7년 현충사를 확장할 때 새로 지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위인이 살던 집으로는 옹색해 보인다며 집채를 키웠지만 겹처마 집이 고졸(古拙)한 품격과 맞지 않아 어설퍼 보인다. 사랑채 앞에 있던 행랑채·마사(馬舍)· 우사(牛舍) 건물도 뜯어버렸다.

여하튼 이 유서 깊은 집이 앉아 있는 땅이 경매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집 오른쪽 뒤편 선산에 있는 충무공의 용감한 아들 이면의 묘와 충무공 장인·장모의 묘가 있는 부지도 함께다.

충무공 옛 집터는 사유지?

가장 먼저 돋는 궁금증은 이것이다. 현충사는 국가 소유인줄 알았는데 어찌하여 충무공의 집터와 선산을 종손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충사 일대를 리모델링할 당시(1967년) 충무공의 종손 이응렬(1914~93)씨는 자손으로서 고택과 선산의 땅은 지니고 있는 것이 옳은 것 같다고 피력했다.

종손에 대해 큰 호감을 가지고 있던 박 대통령은 그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전체 부지 중에서 그 일대만 종손 소유로 허락했다. 그 뒤 오랫동안 문중의 자부심이었던 그 땅이 요즘에 와서는 가문의 수치를 돋우는 소재가 된 셈이다. 고택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현충사 확장 이후 그 일대에 살던 충무공의 후예들은 인근 백암리 일대에 당시 정부가 조성해준 마을에 들어가 살게 된다.

종손 또한 1974년 무렵 고택을 떠나 마을에 기거한다. 현재 백암리에는 20여 가구 정도의 후손이 농사를 짓거나 현충사 잔디밭을 매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이후 그 집은 현충사 관람객들의 구경 코스 중 하나가 된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빈 방이지만, 많은 사람은 충무공의 숨결을 느끼고 갔을 것이다. 1년에 두 번씩 충무공파 종친들이 제사를 지내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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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婦가 무슨 사업을 했기에

종부(宗婦) 최씨는 부동산개발사업을 한다. 그는 자신의 빚으로 고택 땅이 경매로 넘어간 경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7년간 종갓집 며느리로 살아오면서 말 못할 마음고생을 했다. 종갓집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재단법인 형태의 충무공기념사업회를 설립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재단 설립자금을 만들기 위해 부동산개발사업을 하다 건설경기 불황과 정부 투기지역 지정으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일시적 문제다. 곧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언론에서 떠들고 여러 군데서 나서는 바람에 오히려 빚 갚을 시간을 벌기 어렵게 되어 차질을 빚을 판이다. 5월쯤이면 자금 사정이 풀린다. 경매가 한 달만 연장되면 정리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종친회 측에서는 조금 다른 말을 한다. 종친회장인 이재왕 씨는 이 기념사업회가 단지 땅을 팔기 위한 방패막이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최씨의 사업과 관련해 동업자인 한모 씨가 대리인으로 활동하는 점에 대해서도 종친회에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종갓집 재산을 일련의 사업에 날리게 된 배경에 두 사람의 밀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다.

종부 쪽의 입장에서 보면 의지할 데 없는 그가 자신의 꿈인 기념사업회를 추진하기 위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위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종부와 종친회장이 서로 격한 표현으로 비난하는 상황은 단지 이번의 경매만이 원인인 것은 아니다. 충무공 종가의 며느리와 종친들의 골 깊은 갈등은 가문의 미래가 벼랑에 몰린 듯한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향상 자유기고가 [isom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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