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 '재벌개혁 지침' 지시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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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대통령당선자가 재벌의 구조조정 작업을 서서히 가속화하고 있다.

외환 조달 위기가 한 고비 넘어가자 본격적인 경제 구조조정에 나서려는 것같다.

그 첫 단계는 '정리해고 불가피 천명' 이다.

노동자 대상의 선언이었다.

노동계가 은근히 들끓으며 재계의 '노력' 을 촉구하자 5일 두차례에 걸쳐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없으면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발언도 처음 나왔다.

5일 시무식 인사말에서 올해 우리가 치러야할 고통분담의 선후관계를 강도높게 언급했다.

특히 재벌의 고통분담을 강조했다.

"고통분담에서 과거와 같이 일부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은 없을 것" 이라며 "먼저 정부부터 고통을 분담할 것이며 오늘날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큰 기업이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 이라고 역설했다.

그 다음이 노동계.국민이며 억울하고 불공평한 사람,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 굳이 도식화하자면 정부→대기업→근로자의 순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오후엔 비상경제대책위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뒤 '재벌이 노력하는 것은 알겠으나 구체적 조치가 보이지 않는다.

전전이 없으면 정부가 개입할 수도 있다' 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같은 일련의 발언은 노동자와 재계 양쪽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우선 코앞에 닥친 금융계 및 전 산업의 정리해고 문제로 노동계가 크게 술렁거리는 상황을 의식한 때문 같다.

이어 재계를 향해서는 부실기업을 조기에 털어버리도록 경고를 던졌다.

'자구노력 없이 정리해고만으로 경쟁력을 회복해 어물쩍 넘어갈 생각을 말라' 는 암시다.

당선자 진영은 실제로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10여개에 이르는 각종 '조치' 를 내놓을 작정이다.

이미 확정된 계열사 상호지급보증금지 및 결합재무제표 제도의 99년 도입 외에도▶인수.합병 여건 촉진▶소액주주 대표소송권 부여▶계열사 상호 보조에 대한 과세▶여신관리 기준 강화▶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 제한 폐지▶업종 전문화 등이다.

이중 몇가지를 현실화함으로써 대기업 집단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한계 기업들을 '기업거래 시장' 에 내놓도록 해 해외자본을 유치한다는 것이다.

재계는 이에 대해 재벌의 규모 축소가 궁극적으론 근로자 대량 해고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金당선자측은 재벌의 한계기업 정리가 해당 재벌의 군살을 덜어내는 한편 국가적으로는 한정된 투자재원의 효율성을 높여 새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게 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현종.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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