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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계의 조류]2.초패권국 미국(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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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냉전종식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외교는 소련과의 대결이라는 구조적 속박에서 벗어났다.

소련 봉쇄라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약소국들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이유도 사라진 셈이다.

아울러 일본과 유럽대륙이 만성적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반면 미국은 최근 몇년간 괄목할 호황을 누려왔다.

경제만 따로 떼어놓아도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답' 을 써가는 나라로 부상했다.

즉 누구도 미국의 절대적 우위에 도전하기 어렵게 됐으며 동.서간의 갈등구조를 이용, 미국의 뜻에 거슬리는 정책을 취하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올 한해도 비교적 느긋하게 자국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세 (勢) 굳히기' 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먼저 러시아.중국 등 각 열강과의 양자관계도 이같은 맥락에서 짜여질 게 틀림없다.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를 G7에 포함시켜주는 한편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에 체코.헝가리.폴란드를 가입시키기로 결정했다.

궁극적으로는 러시아를 포함하는 대규모 NATO 확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인 셈이다.

또 밴쿠버 아태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의 가입 가능성을 타진했다.

세계무역기구 (WTO) 가입을 포함, 러시아를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끌어들이겠다" 는 미국의 노력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장쩌민 (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워싱턴 방문으로 미.중관계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올해에 이루어질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중 (訪中) 을 계기로 최혜국대우 (MFN) 의 영구연장과 WTO 가입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제협력을 강화, 중국의 자본주의화와 민주화를 서두르겠다는 이른바 '포괄적 개입정책' 이 올 대중 (對中) 관계의 화두로 자리잡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에서 보이듯 중국의 팽창을 경계하는 대중 견제전략도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한편 미국은 주로 경제적 이유로 인해 과거 소홀했던 지역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다.

미국은 무진장한 석유 매장량으로 인해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아제르바이잔 등 카스피해 연안 국가들과 긴밀한 유대를 맺으려 노력할 것이다.

미국이 유엔을 중심으로 한 아프가니스탄 내전종식 방안에 매달리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중앙아시아로부터의 안정적인 석유수송로 확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경제적 처녀지인 아프리카를 비롯, 서남아시아.중남미에 대해서도 미국은 새로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의 경우 클린턴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 고위관리들의 이들 지역 순방이 잦았다.

어쩌면 미 외교의 가장 큰 걸림돌은 소련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찾아온 국민들의 무관심일 것이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미 상.하 양원 의원의 3분의1은 여권조차 없다.

미 외교의 손발을 묶는 해외 경제제재는 주로 의회에서 만들어진다.

결국 미국인들의 무관심이 미 대외정책을 교란시키지 않는 한 세계를 경영하겠다는 미국 외교의 기조는 더욱 굳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 = 이재학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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