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병상의 시시각각

미네르바와 함께 살아가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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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미네르바와 대담했던 인터넷 논객이 조심스러운 표현으로 글을 올렸다. 인사를 나눌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그와 소통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질문의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았고, 답변도 시종 겉돌거나 동문서답이었다고 한다. 그의 한국 경제 진단은 신문 기사 한 꼭지의 질을 채워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인터넷을 뒤져 리플레이했다. 정말 답답하고 황당했다. 개인적으로 진짜가 아닐 것이란 의심을 풀 길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박대성이란 개인이 아니다. 법원의 무죄 판결로 제2, 제3의 미네르바가 계속 나타나리란 점이다. 무죄를 선고한 판사는 정치적 성향이 치우치거나 튀는 성격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엄청난 파문에도 불구하고 사실 유죄를 선고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다. 전기통신기본법은 ‘공익을 해(害)할 목적으로 공연(公然)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한다. 유죄가 되려면 미네르바가 자신이 쓴 글이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도, 공익을 해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썼어야 한다.

물론 미네르바 본인은 이를 모두 부인한다. 이런 경우 판사는 미네르바가 썼던 글을 통해 그의 생각을 추적해야 한다. 미네르바가 허위임을 알고 썼다는 점을 확신해도 아직 유죄는 아니다. 공익을 해치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점까지 확신해야 유죄를 선고한다. 이번의 경우 판단 근거가 글뿐이라 더 어렵다. 미네르바가 누굴 만나서 얘길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한 적이 없다. 오로지 글만 읽고 필자의 두뇌 속에 들어가 사실관계의 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다시 양심을 찾아 나쁜 의도를 품었는지 여부를 캐내기란 정말 어렵다. 애매하거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미네르바 사건이 ‘표현의 자유’라는 특별한 기본권과 직결된 점도 까다롭다. 민주사회에서 기본권의 제한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며, 특히 ‘표현의 자유’는 그중에서도 엄밀하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꼽힌다. 물론 표현의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 대표적인 경우가 명예훼손이다. 누구나 자기 의사를 표현할 자유는 있으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최근 우리 법원도 인터넷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엄벌하는 추세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경우 명예훼손이 아니다. 훼손당한 것이 ‘공익’이라고 봤기에 전기통신기본법을 적용한 것이다. 명예훼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죄 선고가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법을 정비하고 규제를 더한다 해도 미네르바의 후예들이, 진위와 무관하게, 속출할 것이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이런 미네르바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냐는 고민이다.

개인적인 대안으로 ‘지성의 균형 맞추기’를 제안하고 싶다. 지식과 정보의 편식(偏食)을 피하기 위해 각자 노력하자는 취지다. 마치 몸통을 왼쪽으로 비튼 다음엔 반드시 오른쪽으로 틀어 균형을 맞추는 스트레칭처럼, 좌파적 글을 읽은 다음엔 반드시 우파적 글을 읽어 생각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생각과 같은 글만 골라 읽는 경향이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글을 억지로라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쏠리지 않고 현혹되지 않는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 끼리끼리 모여 집단사고에 빠지기 쉽다. 속성상 진보적·이상적 경향이 강하다. 인터넷에 많이 의존하는 사람은 내키지 않더라도 활자 정보를 함께 습득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즐겨 찾는 인터넷 사이트와 성향이 다른 활자매체일수록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엔 싫어도 참고 읽어야 한다. 마치 쓴 약 먹듯.

오병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