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안빠지고 대출은 막히고… 분양받은 아파트'그림의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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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아파트를 분양받아 놓고 잔금을 못내 입주는 커녕 연체료만 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파동 이후 이사비용 등을 줄이기 위해 이사를 자제하는 바람에 전세집이 빠지지 않기 때문. 게다가 은행돈을 빌려 옮기고 싶어도 대출이 여의치 않고 최근 이자까지 크게 올라 선뜻 대출여부를 결정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입주를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이때문에 새 아파트를 인근보다 5백만~1천만원 정도 싸게 세 놓았지만 공급과잉으로 세입자 구하기가 힘들어 연체료만 무는 입주예정자들이 많고 이에따라 빈아파트도 늘고 있다.

회사원 金모 (40) 씨는 지난달 1일부터 입주가 가능한 일산 D아파트 50평형 잔금 3천만원을 내지 못해 여지껏 입주도 못하고 이달부터 하루 1만4천원씩 연체료만 물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1억3천천만원짜리 전세집이 두달째 나가지 않고 있기 때문. 金씨는 앞으로 전세집이 나갈 때까지 연체료를 계속 물게 됐다며 울상을 지었다.

D건설 관계자는 "9백여가구중 10%인 90가구가 아직 2천만~3천만원씩의 잔금을 내지 않았다" 면서 "미납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본 결과 대부분 살고 있는 전세집이 안빠져 입주를 못하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초부터 입주가 시작된 서울 옥수동 G아파트도 총 7백74가구중 1백80가구가 4개월째 잔금을 내지 못해 연체료를 물고 있다.

아직 잔금을 내지 못했거나 잔금은 냈지만 살고 있는 전세집이 빠지지 않은 경우등을 포함, 2백여가구가 빈집으로 남아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입주가 시작된 경기도 용인 죽전 H아파트 3백여가구도 잔금 납부율이 평균 60%에 그치고 있다.

이 회사관계자는 "종전에는 입주시점에 90%정도는 잔금을 냈지만 이 아파트의 경우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는 24평형만 80%정도 잔금을 냈고 잔금지원이 되지 않는 33평형은 50%, 42평형은 80%가 아직 돈을 안냈다" 고 말했다.

죽전 하나공인중개소 이기훈사장은 "주변 시세보다 1천만원 정도 싸게라도 전세를 놓을 테니 빨리 세입자를 구해달라는 문의가 많지만 찾는 사람이 드물다" 고 말했다.

지난 10일전후부터 1만5천여가구가 한꺼번에 입주가 시작된 수원 영통신도시 사정은 더욱 안좋다.

지난 13일부터 입주가 개시된 B아파트는 전체 6백20가구중 40%인 2백50가구만 잔금을 치렀다.

나머지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잔금을 내기 위해 내놓은 전세물량은 줄잡아 6천여가구에 이르고 있지만 소화된 물량은 2천여가구에 불과하고 나머지 4천여가구는 세입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전세가격은 24평형 2천7백만원, 32평형 4천만~4천5백만원선으로 한달전에 비해 5백만~1천만원정도 빠졌다.

영통지구 1만5천가구중 실제 입주한 가구는 2천여가구에 불과하고 나머지 1만3천여가구는 텅텅 비어 있는 실정이다. 이 지역 부동산중개업소들은 “60여개 중개업소마다 전세물건이 쌓여 있지만 중개되는 물건은 많지 않아 이같은 상황은 본격적인 이사철인 내년 봄까지 이어질 것” 으로 내다봤다.

손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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