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정치는 언제나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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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문제는 선거를 치르는 정당은 뜨겁지만 정작 국민 다수의 관심이 아직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거의 중심 이슈가 먹고사는 민생 문제가 아니라 정당 내 세력 경쟁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 세력까지도 예외가 없다. 누구는 그래도 부평을에서 ‘경제 살리기론’ 대 ‘경제위기 책임론’이 맞서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당의 경우 지난 1년의 성적표나 야당의 경우 지난 5년의 성적표를 돌아보면 그렇게 자신감 있게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우리 정치의 이중성, 다시 말해 탈(脫)정치화와 재(再)정치화라는 상반된 경향에 주목하고 싶다. 탈정치화란 다름 아닌 정치적 무관심이다. 정치 혐오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치 불신 경향이 최근 적잖이 커져 왔다. 낮은 투표율과 무당층의 증가는 직접적인 증거다. 지난해 총선의 투표율은 46%에 불과했고,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무당층은 50%에 육박한다.

탈정치화의 반대편에는 재정치화가 놓여 있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재정치화는 사회운동의 정치를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운동이 활성화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정당과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정당과 국회를 통한 대의의 정치가 아니라 직접 거리로 나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운동의 정치를 지켜보면 우리 사회만큼 정치적 관심이 높은 나라도 드물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이중적 경향의 원인으로 존재하는 시간 격차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정치사회와 경제·시민사회 간의 시간 격차가 커져 왔으며, 그 변화 속도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일종의 ‘정치 지체(political lag)’ 현상이 두드러져 왔다. 경제·시민사회에선 ‘글로벌 스탠더드’ 또는 ‘포스트모던 노마드’와 같은 양상이 보편화돼 온 반면, 정치사회에서는 ‘몸싸움’ ‘날치기’와 같은 전근대적 행태가 반복돼 왔다.

주목할 것은 이런 정치 지체 과정에서 국민 일부는 탈정치화하고 또 일부는 재정치화해 왔다는 점이다. 더불어 한 개인의 정체성 안에서도 탈정치화와 재정치화 경향이 공존하며, 그것이 바로 정치적 무관심과 운동의 정치로 각각 표출돼 왔다. 바로 이 점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으면서도 그 정치에 거리를 두고자 하는 일종의 모순적인 정치적 무의식이 작동하는 곳이 다름 아닌 우리 사회다.

이런 역설적인 정치적 무의식이 낳은 결과가 이른바 ‘여의도 정치’에 대한 애증병존이다. 교과서적 관점에서 여의도 정치는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다. 한없이 더딘 의사결정, 때때로 격렬한 입법과정, 정권교체 후 어김없이 등장하는 각종 게이트는 구체적인 사례다. 하지만 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여의도 정치가 느리더라도 조금씩 발전해 온 것도 사실이다. 정치를 재생산하는 논리는 법의 논리, 시장의 논리와는 다르다.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만큼 그 과정은 더딜 수밖에 없으며, 이성과 욕망을 모두 담아내야 하는 만큼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직관과 결단에 의존해야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정치의 진화다.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만큼 정치의 진화 없이는 경제위기 극복도, 거버넌스 구축도, 선진국 진입도 사실 불가능하다. 이 정치의 진화는 정치인들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투표를 포함해 의사결정에 국민 다수가 적극 참여하고 권력을 생산적으로 감시할 때 성취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정치는 언제나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 정치는 우리 삶을 결정하는 그 절차와 내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 유권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번 재·보궐 선거에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