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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클리닉] 널뛰는 아이 성적, 윽박지르지 말라 기분 때문일 경우가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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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3월 모의고사 평균 1.5등급/ 4월 모의고사 평균 5등급/ 4월 중간고사 1등급/ 6월 모의고사 1.1등급/기말고사 4.7등급’

의대를 희망하는 고2 준범의 들쑥날쑥 성적표다. 보고 있자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준범이의 부모는 모두 중·고등 교사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고교 1학년 때부터 2학년 1학기 기말까지 1년반의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표를 파일에 챙겨오셨다. 어머니는 “어떤 때는 거의 전 과목 1등급이다가 어떤 때는 5등급까지 곤두박질치니 종잡을 수가 없네요. 도대체 어느 게 제 실력인가요”라고 물었다.

모의고사는 대학입학 성적에 안 들어가니까 대충 보는 학생이 많기에 내신과 모의고사의 차이인가 살펴봤다.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정 과목에서 편차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전 과목 전 과정이 요동친다. 실제로 분석을 해보니 제일 잘 봤을 때 성적이라면 서울 소재 의과대학 합격이 가능한 성적이지만 가장 나쁠 때의 성적은 지방대 공대도 낙관할 수 없다.

필자는 준범이와 상담을 시작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떨 때는 밤새워 공부를 해도 다음 날 수업시간에 졸리지도 않고 오히려 1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1분1초가 아깝게 느껴져요. 그런데 어느 날은 모든 게 다 귀찮고 집중도 안 되고 공부도 하기 싫고 그냥 잠만 자고 싶어요.”

무단 결석을 한 날도 있고 심지어 수업 도중에 몰래 빠져나가 지하철을 타고 서울시내를 돌아다닌 적도 대여섯 번 있다고 한다.

필자는 준범이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선생님은 준범이는 전교에 알려진 유명인사라고 했다. “지·하”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고 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줄임말이다. 우등·모범생과 열등·불량학생을 수시로 왔다갔다해서 붙여진 별명이란다.

3학년 여중생 승희도 준범과 별로 다르지 않다. 승희 엄마는 “중간고사 95점이면 기말은 영락없이 60점대로 죽을 쒀요”라고 말했다.

승희 역시 준범과 비슷한 사례다. 단지 다른 점은 학교생활에서 승희는 늘 모범생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처럼 두 학생은 기분이 지나치게 빠르게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그 진폭이 크다. 지나치게 기분이 급상승했다가 떨어질 때는 곤두박질을 친다. 이런 기분에 따라 성적과 공부에 대한 의욕도 주식시장처럼 널뛰기를 한다.

필자는 두 학생에게 약물과 인지행동치료를 실시했다. 서서히 기분이 안정되었고 당연히 그 원인이 제거되니 결과는 공부에 대한 열의와 성적으로 이어졌다. 그럼 과연 이 두 명의 실제 실력은 무엇일까. 답은 가장 잘했을 때의 성적이 제 실력이었다. 실제로 준범이는 수능100% 선발 전형으로 의대 입학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자녀의 성적이 지나치게 들쭉날쭉하면 부모는 자녀의 성실성을 탓하거나 혹은 단원별 문제가 아닌가 싶어 학원 과외에 의존하는 수가 많다. 하지만 이들처럼 기분의 기복 때문에 성적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자녀를 탓하거나 윽박지르기 전에 그 원인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찬호(43)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마음누리/정찬호 학습클리닉 원장 ▶중앙대 의대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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