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목회' 펴는 송상호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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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알았어, 고마워." 송상호(左) 목사가 홀로 사는 정희순 할머니를 찾아 안부를 묻고 있다. [박정호 기자]

1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가리마을. 송상호(35) 목사가 혈혈단신 살아가는 정희순(84) 할머니를 찾았다. 1주일에 한 번씩 하는 반찬배달이다. "할머니, 저 왔어요.""왜 이리 오랜만에 왔어."

할머니의 별명은 '바나나 할머니'다. 송 목사가 바나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매주 바나나를 준비해 내놓는다. 목사도 할머니의 정성을 물리칠 수 없다.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런 아들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돈보다 사람이 그립거든."

송 목사는 '24시간 대기조'다. 동네 노인이 '콜'하면 15인승 승합차를 몰고 낮이나 밤이나 달려간다. 병원이나 결혼식에 참석하는 할아버지.할머니가 '단골 고객'이다. 요금은 무료. 이쯤 되면 거의 '머슴'과 같다.

"신앙의 참뜻은 섬김과 나눔입니다. 제 자신부터 그런 삶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게 가정.지역.국가.세계로 퍼지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만한 진리도 없어요."

목사가 웬 유교 타령?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노자의 '도덕경'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논어''화엄경''코란'은 물론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도 좋아합니다. 꼭 교회에 다녀야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죠. 하나님은 천지와 사람을 창조했다고 '창세기'에 나와 있잖아요."

송 목사는 '삶을 예배로, 예배를 삶으로'를 추구한다. 발을 딛고 사는 마을이 바로 교회요, 지역주민을 섬기는 게 예배라고 확신한다. 때문에 그가 이끄는 '주님의 교회'는 독특하다. 예배는 주일 낮 한번이요, 교회당 간판도 없고, 심지어 목회자 사례비도 없다. 예컨대 그는 영어 학습지 교사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부산의 소형 교회에서 5년간 전도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는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는데 한국 교회의 대부분은 조직체로 운영됩니다. 크기에 관계없이 교회 자체가 우선이죠. 그러다 보니 볼썽사나운 일이 많이 생깁니다. 초기 교회의 공동체 정신을 되찾고 싶습니다."

그는 '봉사하는 목회'를 선택했다. 쓸쓸한 노인에게 이발.목욕을 해드리고, 가난한 아이에게 공부방을 차려주고, 사정이 딱한 외국인 노동자의 손발이 됐다. '더아모'(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라는 자원봉사문화센터(http://duamo.com.ne.kr)도 열었다.

'주님의 교회'는 건물도 없다. 현재 컨테이너 세 개를 갖다놓고 교회를 지을 생각이나 이것 저것 걸리는 게 많다. 그래도 송 목사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교회 성장학 관점에선 0점이죠. 뜻이 있었다면 번듯한 교회를 차렸을 겁니다. 물론 저만 옳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이런 교회도 있다는 걸 인정해주세요."

안성=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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