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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12> 세 살 때 버릇 여든까지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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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 아기 몇 살?” 엄마가 물으면 아기는 어렵게 세 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세~살”이라고 말한다. 그냥 재롱으로 보이지만 실은 한국인이 되는 첫 관문의 시험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한국의 속담을 봐도 세 살은 인생의 시작이다. 그런데 왜 그것이 하필 세 살인가? 그 비밀은 공자님만이 아신다. 『논어』 양화편에는 공자님이 제자인 재아(宰我)로부터 질문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마디로 부모님의 삼년상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군자도 삼년상을 지내다 보면 일반 예법을 잊게 되고 음악 연주자도 삼년상을 치르고 나면 몸에 밴 음악을 모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일 년이면 족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공자님의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어린애는 세상에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겨우 부모의 품속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부모가 돌아가시면 이번에는 삼 년 동안 자신이 그 곁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재아인들 삼 년 동안 부모 품에 안겨 자라지 않았겠는가.

부모의 삼년상을 인륜적 시각에서라기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논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벌판을 뛰어다니는 망아지도 있고, 알에서 깨어 나오기 무섭게 하늘로 곧장 날아오르는 앨버트로스 같은 새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짐승과 달리 삼 년 동안 한순간도 부모의 도움 없이는 우는 것 말고는 고개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존재다. 속수무책 벌거숭이 미숙아로 이 세상에 떨어진 결함 원숭이가 인간이 된 것이라는 아르놀트 겔렌의 말이 거짓이 아니다. 그래서 2000년도 훨씬 이전, 삼년상의 쟁점이 바로 오늘의 삼세아(三歲兒) 교육의 이슈로 직결하게 된다.

그렇다고 세계의 모든 아이가 삼 년 동안 부모의 사랑 밑에 자라고 세계의 모든 사람이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르는 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에도시대 때의 일본 어머니들은 가정형편이 곤궁하면 낳은 아이를 죽이는 풍습이 있었다. 그것을 아이를 신에게 되돌려 준다는 뜻으로 ‘고가에시(子返し)’라고 불렀고 푸성귀를 솎아낸다는 뜻으로 ‘마비키(間引き)’라고도 했다. 위험한 낙태보다는 낳아서 죽이는 편이 안전하다 하여 고가에시를 하는 비정한 어머니들도 있었다. 어미가 애를 목 졸라 죽이는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신사(神社)의 에마 그림에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수전 핸리의 연구에 의하면 에도시대의 일본 농가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아이를 죽일 만큼은 곤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은 합리적인 가족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약간의 종교적인 뜻도 작용한 것 같다. 에도시대의 문화 감각으로는 애는 신이 내려보낸 것으로 일곱 살까지는 자기 애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식구가 늘어나면 동리 사람의 압력도 작용하여 고가에시는 사회풍습의 하나로 퍼지게 되었다. 유교가 들어오고 막부의 금지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말이다.

하기야 위대한 로마시민들도 그랬다.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전쟁터의 병사 하나가 남자애를 낳으면 훌륭하게 잘 기르고 여자애면 소쿠리에 담아 강물에 띄우라고 한 편지가 발견돼 당시의 자녀관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설사 죽이지 않는다 해도 옛날 미국인들은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노예로 삼았다. 엥겔스의 이야기로는 서구에서 가족을 뜻하는 패밀리아는 원래 로마에서는 노예를 뜻하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골치 아픈 이야기들은 앞으로 수도 없이 듣게 될 테니까 여기에서는 그저 주걱으로 뺨을 때려도 밥풀을 떼어 먹을 수 있어 행복해했던 흥부네 식구가 모두 몇 명이 되었는지 맞혀보는 것으로 끝내기로 하자.

정답은 열두 명. 그렇게 많은 애들을 푸성귀처럼 솎아내는 마비키나 잘못 배달된 물건을 반송하듯 고가에시를 하지 않고 “너 몇 살” “나 세~살” 재미있게 재롱 떨며 사람으로 키운 흥부의 이름을 잘 기억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저출산 시대에 더욱 그리워지는 우리 한국의 아버지요, 어머니의 옛 얼굴이었으니까. 혼자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 밑에서 3년은 보호받아야 인간이 되는 이 늦깎이 생물은 이천수백 년 전 공자의 시대와 달라진 게 없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공자처럼 삼년상을 지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변화요 진화라고 부르는 인간 문명의 역사라는 거다.

이어령


[연재]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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