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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9> 돌상 앞의 한국인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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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콩나물 시루가 된 만원 엘리베이터 속에서 이따금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만약 인간이 다른 짐승들처럼 네 발로 돌아다닌다면 지금 이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되었을까. 컨테이너처럼 길게 눕혀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겠지. 사람들은 양 떼 모양처럼 아주 거북하고 민망한 자세로 늘어서 있었을 것이다. 웃음이 나오다가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인간의 직립 자세의 기원에 대한 프로이트 박사의 가설이 떠오른다. 그것은 항문과 생식기가 있는 엉덩이와 얼굴이 있는 머리 사이를 되도록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자세라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미 앞 글에서 기저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연 상태에서 인간적 문화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대소변 가리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결단코 프로이트 박사와 같은 산문적이고 건조한 상상력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내 기억을 비디오처럼 리와인딩하면 처음 일어서서 웃고 있는 한국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투부터가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임신하는 것을 아이가 “선다”고 하지 않는가. 말의 이미지를 통해서 보면 한국의 아이들은 어머니 배 속으로 강아지처럼 기어 들어온 게 아니라 당당히 선 채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도 한국 애들은 엎어 재운 서양 아이들과는 다르다(엎어 재운 아이들이 질식사로 죽는 사고가 잇따르자 요즘 서양에서도 한국식으로 눕혀 재운다). 한국 애들은 누워 지내던 태에서 엎어지는 운동을 하고 다음에는 고개를 들고 누에 벌레처럼 배로 기어가는 단계에 이른다. 일 년 가까이 그런 과정을 제 힘과 의지로 자연스럽게 통과해야만 두 발로 일어서는 마지막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

중력의 법칙에 따르면 엎드려 기어 다니는 이상으로 편한 자세는 없다. 이 세상 어떤 의자나 책상도 두 다리로 서있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모험을 자청하는가. 더구나 한국의 장판은 양탄자가 깔린 서양이나 일본의 다다미 방과는 다르다. 한번 넘어지면 콘크리트 바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무릎을 찧고 머리를 부딪쳐 울면서도 다시 일어선다. 유난히 정이 많은 한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인데도 애가 일어나 걸음마를 배우는 순간만은 옆에 떨어져서 추임새만을 한다. “따로~ 따로~! 따로~ ”라고 외치면서 손뼉을 친다. 아이는 다시 일어섰다가는 쓰러지고 쓰러졌다가는 또 일어선다. 그러다가 보라, 이윽고 어느 날 아이는 제 발로 일어선다. 아직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은 눈에, 볼 위에, 입술 위에 은은하게 어리는 미소를 보았는가.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이 땅의 지평 위에 우뚝 선다. 한 일(一)자의 땅바닥 위에 사람 형상을 딴 큰 대(大)자를 세워 놓은 한자의 그 설 입(立)자처럼, 혹은 한 폭의 깃발처럼. 그런데 서양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최초로 일어선 순간의 감동을 잘 모른다. 라이스 유크리드라는 사람이 ‘베이비 점퍼’의 보행기를 만들어 특허(US 8478)를 낸 1851년부터의 일이다.

2002년 아일랜드의 매터병원에서 가레트 박사 팀이 190명의 부모를 상대로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이들 가운데 102명(54%)이 보행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 사용 기간은 중간치로 계산해 생후 26주에서 54주까지 반년 이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빨리 일어나 걷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인데 실제로는 보통 애들보다도 오히려 서너 달 더 늦어진다는 조사 결과다. 거기에 보행기가 굴러 떨어지는 사고도 많이 발생하여 캐나다에서는 이미 십여 년부터 법으로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미국에서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이유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제왕절개 수술로 탄생의 자유와 그 권리를 빼앗긴 것처럼 이번에도 일어서고자 하는 자율의 의지와 훈련이 보행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호사스러운 보행기 위에서 기기도 전에 먼저 걷는 우리 아이들도 이제는 서양 애들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언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는지 아이도 부모들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따로 따로 따로”라는 전통적인 추임새의 말조차 모른다. 그것은 곧 첫발을 떼놓고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에 은은히 미소 짓는 한국인의 모습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어령


[연재]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9> 돌상 앞의 한국인 ③ 따로 서는 아이와 보행기 위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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