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나선’의 작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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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07면

1 ‘960 붉은 혀-피의 오솔길, 물의 연기’, 빈 1996, 혼합 재료, 70.5x49.8cm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다. 화가로서, 조각가로서,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건축가로서 그의 예술혼은 장르를 쉽게 넘나든다. 빈의 주요 관광 코스로 꼽히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가 그의 작품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대형 연립주택인데, 가구별로 외벽의 색을 서로 다르게 칠하고 층별 구간도 부드러운 곡선형으로 꾸며 멀리서 보면 마치 울긋불긋 모자이크 작품같다.

‘훈데르트바서’전, 4월 10일부터 6월 13일까지, 서울 청담동 디 갤러리

특히 그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꿈을 꾼 자연주의 작가다. 여행 도중 아름드리 나무를 자르려는 농부를 만나자 그를 설득해 나무로 인한 손해 비용을 대신 내줬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매년 꼬박꼬박 비용을 대던 그가 사망하자 그의 유지를 계승한 재단이 대납하고 있다고 한다. 빈·베네치아·파리·뉴질랜드 등에서 작업했던 그는 가는 곳마다 나무를 심고, 살충제 대신 퇴비를 사용하며, 재래식 화장실을 꾸미는 등 생태적 낙원을 추구했다. 초현실주의가 주류를 이뤘던 빈을 떠나 파리로 옮긴 이유도 이 같은 자연친화적인 사상 때문으로 꼽히고 있다.

2‘Homo humus come va-10002 Nights HWG 83 860’, 10개 색깔의 금속 엠보싱과 혼합 재료 그래픽, 1984, 종이 크기 69.5 x 50cm, 이미지 사이즈 64 x 43 cm

그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지난 2월 청담동에 문을 연 독일계 화랑 디 갤러리(DIE GALERIE)를 통해서다. 디 갤러리는 7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처음 문을 연 뒤 이탈리아·스페인·미국에 이어 서울점을 냈다.

원래 그의 작품은 대부분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번 한국 전시는 그와 30년 우정을 다져온 디 갤러리 독일의 페터 펨퍼트 회장과의 인연 덕분이라는 것이 디 갤러리 서울 김하린 실장의 설명이다. 펨퍼트 회장은 “이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굳건한 마음”이라고 전시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빈의 훈데르트바서 박물관에서 들여온 회화 6점, 카펫을 활용한 평면작 3점, 1m 높이의 건축 모형, 판화 작품 등 3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판화 작품 중에는 ‘Homo humus come va-10002 Nights HWG 83 860’가 가장 눈여겨볼 만하다. 특수 실크스크린, 석판화, 금박과 엠보싱 프린트를 혼합했다. 제각각 다른 색으로 총 1만2개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원시적인 화려한 색감과 나선형의 선들이 유기적으로 융합돼 있다. 이는 빈에서 활동하며 얻게 된 특유의 장식적 경향에 모로코 등에 머물며 영향을 받은 아라비아 미술, 그리고 아프리카 원시주의까지 더해져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김하린 실장은 훈데르트바서가 평소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주장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주장하며 자연의 형상을 추구한 작가입니다. 대표적인 모티브는 ‘나선’이죠. 52년부터 작품에 적용했는데, 집중에 대한 그의 사상과 함께 서서히 삶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차갑고 비인간적인 합리주의에 맞서 예술과 삶의 통합에 초점을 맞춘 작가의 작품은 물질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문의 02-3447-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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