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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잊혀진 민족문화 되살려 국난 극복 발판 삼아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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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해는 국난 (國難) 의 해다.

경제주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경제주권만 상실했는가.

나는 이 모든 결과는 정신문화의 상실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모든 현상은 근본에서 비롯된다.

난국이 닥쳤을 때 근본을 점검하려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 정신문화는 한학 (漢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문헌대국 (文獻大國) 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문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의 시작과 동시에 일제가 문화적 침탈을 본격화하면서 우리의 문화적 정수를 온축하고 있던 한학적 전통은 근본부터 멸절됐고 귀중한 문헌은 사장되기 시작했다.

해방 후에는 합리성의 기치 아래 '서양적인 것' 은 '동양적인 것' 에 엄청난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다.

수많은 문헌들이 어둠 속에서 새 생명의 빛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이 새 생명을 얻을 때 우리는 난국을 극복할 힘과 신념을 갖게 된다.

최근 중국은 서구 지배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오리엔탈리즘을 확립하기 위해 자국 내의 전통문화와 가치체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수용하는 작업을 왕성하게 진행하고 있다.

중국 학계 역시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현대어로 재해석하는 한편 한자문화권을 통합하는 새로운 문화질서를 구축해 가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한국 고전문학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인적 자원을 가동해 우리 고전문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한학계도 중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중국문학 및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해 국내에 번역.소개하거나 연구하는 데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우리 고전문학을 중국 측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노력과 작업도 필요하다.

한.중간 학문적 불균형과 일방적 수용은 자칫 문화적 지배와 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학계는 물론 일반 국민 전체가 우리 전통문화의 고유성과 우수성에 대한 긍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민족문화를 재검검하는 한편 한.중간 '학문적 공동체' 를 통해 상호 교류와 수용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1천백여년전 최치원 (崔致遠) 은 어떠했는가.

18세의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 '격황소서 (檄黃巢書)' 를 지어 당나라 조야를 놀라게 했다.

소중화주의 (小中華主義) 를 주창했던 우암 (尤庵) 송시열 (宋時烈) 의 웅대한 세계사적 인식, 청 (淸) 나라 문화를 적극적이면서 능동적으로 수용할 것을 주장했던 박지원 (朴趾源) 의 웅지를 가슴에 굳게 새겨야 한다.

몽고 침략으로 국난이 닥쳤을 때 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조상들의 철학적 발상을 철저히 배우자. 이것이 바로 70년대 일어났던 국학부흥 운동을 계승하며 오늘의 국난을 극복하는 길이다.

권석환 <상명대 교수·중어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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