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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소금꽃 피우려면 바닷물 100바가지 그리고 굵은 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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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증도. 신안군에 속한 1004개 섬 중의 하나다. 주민 2000명이 겨우 넘는, 다도해의 조그맣고 외진 섬마을이다. 그러나 이제 증도는 여전히 작지만, 더 이상 외진 섬은 아니다. 섬 입구에 떡하니 자리 잡은 태평염전 하나로, 다시 말해 소금 하나로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2007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선정됐고, 태평염전과 염전에 딸린 소금창고는 지난해 문화재로 등록됐다. 무엇보다 이곳의 소금은, 전 세계 미각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 태평염전이 지난주 올 첫 소금을 생산했다. 긴 겨울을 지낸 증도는 막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염전을 다녀왔다. 몸에 밴 염기가 왠지 싫지는 않다.

증도 글=손민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한낮의 염전은 적요했다. 광활한 대지 위에 반듯이 구획된 소금밭이 가지런히 놓여 있을 따름이었다.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었다. 지금은 소금장인이라 불리는 염부도 한낮엔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게 정지된 듯한 풍경이었다.

정오를 갓 넘긴 시각. 증도 태평염전의 첫 인상은 나른했다. 올 첫 소금을 생산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에서 5시간을 달려왔건만 내심 바랐던 활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소금창고 옆에 매놓은 개 몇 마리만 낯선 방문자의 냄새를 맡고 사납게 짖어대고 있었다.

3 왼쪽부터 천일염, 토판 결정지에서 생산한 토판염, 함초액을 첨가해 가공한 함초소금.
4 20~25일간 증발된 바닷물은 마침내 결정지에서 소금 알갱이로 태어난다.
5 결정지에서 대패로 긁어 모은 소금은 소금창고로 옮겨진다.

태평염전 공장을 찾아갔다. 거기에선 염전에서 수확한 천일염을 한창 가공하고 있었다. 염전에서 나온 소금은 바로 식탁으로 가지 않는다. 공장에서 이물을 가려내고 간수를 뺀다. 소금은 간수를 많이 뺄수록 좋다. 3년 숙성 천일염은 3년간 간수를 뺐다는 얘기다. 취재에 동행한 태평염전 정구술 차장에게 물었다.

“첫 소금을 생산했다고 들었는데, 염전에 사람이 없네요.”

“오후 4시부터 해질 때까지 일을 합니다. 지금은 햇빛과 바람이 일하는 시간이지요.”

오후 4시에 맞춰 다시 염전으로 나갔다. 염부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칸칸이 구획된 소금밭 맨 아래 칸에서 그들은 작업을 시작했다. 소금을 거두는 결정지다. 결정지 뒤로 줄지어 들어앉은 소금밭은 증발지이고. 증발지에서 20∼25일간 머물며 염도를 높인 바닷물이 결정지에서 비로소 소금으로 거듭난다. 결정지를 들여다보니 소금 알갱이들이 보인다. 염전에선 바닷물에서 소금이 알알이 맺힐 때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알알이 맺힌 소금 알맹이는 꽃이라 부른다. 소금꽃이다. 정 차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소금장인들은 해 뜨기 전에 염전에 나와 물을 꺾습니다. 증발지에서 다음 증발지로 물을 옮기는 작업을 ‘물을 꺾는다’고 하지요. 바닷물이 결정지에 다다를 때면 염도가 22∼25도에 이릅니다. 27도가 되면 소금이 옵니다. 해 뜨기 전 결정지에 가둔 바닷물을 해 지기 전에 소금으로 생산하지 못하면 소금의 가치가 뚝 떨어집니다.”

그래서인가. 인사를 건네려 다가가도 염부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엔 하나도 헛된 게 없다. 숙련된 염부로 보이는 서너 명이 대패로 소금을 모으면 나머지 서너 명이 연방 소금을 소금창고로 실어 나른다. 염부의 노동은 태양과 벌이는 시간 싸움이다.

태평염전은 말 그대로 염전이다. 화려한 명승지도 없고 유서 깊은 명소도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이 염전을 찾아온다. 태평염전 자체의 의미 때문이다. 증도는 슬로시티로, 문화재로 지정됐다.

유명해졌다고 염전 살림이 핀 건 아니었다. 소금 값이 워낙 싸서다. 정 차장이 긴 한숨을 쉬었다.

“천일염이 광물에서 식품이 된 게 작년입니다. 그전엔 천일염으로 김치를 절여도 젓갈을 담가도 불법이었습니다. 지금은 중국산 소금에 밀리고 있죠. 가격 경쟁이 안 됩니다. 우리 소금이 세계 최고란 건, 외국의 유명한 주방장들만 인정하고 있지요.”

목포대 함경식 교수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는 프랑스의 게랑드(Gerande) 소금보다 우리 소금은 마그네슘 함량이 2.5배 높고 칼슘은 1.5배, 칼륨은 3.6배 높다. 서해안을 두르고 있는 저 갯벌 덕분이다. 갯벌의 소중함을 몰랐던 우리는 갯벌에서 나는 소금도 우습게 안다.

염전에 가는 건, 너무 익숙해 미처 몰랐던 가치를 새삼 깨치는 일이다. 그리고 땀의 소중함을 겸허히 배우는 일이다. 다시 염전 사람의 말을 빌리면, 소금 한 줌 얻으려면 바닷물 100바가지가 필요하다. 염부가 흘리는 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여행정보

신안군 지도의 지산개선착장에서 증도를 왕복하는 바지선이 운항한다. 바지선엔 자동차도 실을 수 있다. 승용차 기준으로 대당 1만8000원(운전사 요금 포함), 추가 승객은 별도 요금을 내야 한다(1인당 3600원). 1시간30분∼2시간 간격으로 배가 뜨고 운행시간은 30분 정도다. 섬 남쪽의 엘도라도 리조트(www.eldoradoresort.co.kr)는 국내 최상 등급의 럭셔리 리조트다. 주말과 극성수기만 아니면 비회원도 숙박이 가능하다. 방값은 30만원대부터.

증도의 명소라면 드넓은 갯벌을 가로지르는 짱뚱어다리가 있다. 다리 밑 갯벌에서 뛰어 노는 짱뚱어를 볼 수 있어 짱뚱어다리라 불린다. 갯벌에 내려가 짱뚱어·농게·칠게 따위의 갯것을 잡을 수도 있다.

태평염전 즐기기 TIP

먼저 소금박물관에 간다. 학예연구사가 상주하고 있어 해설을 들으며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기대 이상으로 알차게 꾸며져 있다. 입장료 2000원. 염전 체험도 가능하다. 결정지에서 대패로 소금을 긁고 수차로 물을 퍼올리며 놀 수 있다. 염전 체험 이용료 3000원. 061-275-0829.

태평염전 공장에선 현장 가격으로 천일염을 구입할 수 있다. 3년 숙성한 천일염 10㎏ 1포대를 1만원에 판다. 온라인으로도 구입이 가능한데 현장 가격에서 2000원을 추가해야 한다. 061-275-0370, www.sumdlech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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