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가 추천한 명의]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 홍정 아주대 의대 소아외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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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부 지역의 어린이 수술은 내가 책임진다’. 아주대 의대 소아외과 홍정(53) 교수는 경기도 수원에 아주대병원이 개원하던 1994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 생각을 견지한다. 의대생의 꿈은 모교 교수다. 물론 이 꿈을 이루는 졸업생은 희소하다. 의사들은 ‘인연’이 닿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홍 교수는 90년 연세대 의대 외과 교수로 발령받으면서 그 꿈을 이룬 사람이다.

글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최승식 기자

1991년부터 2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대 부속병원에 교환교수도 다녀왔다. 그런데 귀국 후 그는 돌연 신설 대학병원이던 아주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북 지역에는 오래된 유명 대학병원이 많습니다. 하지만 경기 남부 지역만 해도 흔히 말하는 ‘큰 병원’이 없었어요. 아주대병원에 근무하는 것은 환자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들었어요. 신설 병원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생각도 있었지요.”

홍 교수는 의사 집안에서 자랐다. 부친은 전 연세대 의대 흉부외과 홍승록 교수로 77년 4월 국내 최초로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성공시킨 명의다.

아버지를 존경했던 홍 교수는 어릴 때부터 오직 한 길, 의사 될 꿈을 꾸며 살았다. “ ‘죽을 환자를 잘 치료해 살렸을 때 느끼는 기쁨과 보람은 의사가 아니면 누구도 경험하지 못하는 특혜’라는 아버님 말씀을 항상 떠올렸죠.”

74년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그는 인턴 생활을 거치면서 외과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내과는 완치보다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는 만성병 환자가 많잖아요. 반면 외과는 구급차로 실려온 환자도 수술 후 웃으며 걸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래서 그는 전공을 외과로 택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가 전공의로 일하던 80년대 중·후반만 해도 대학병원 외과 수술은 암환자가 대부분이었다. 또 20년 전만 해도 암수술 성적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다. 고생고생해서 수술을 받아도 1년, 혹은 2년 뒤 사망하는 환자를 보면서 의술의 한계를 느꼈다.

반면 항문이 막혀 태어난 어린이, 튀어나온 장이 꼬여 사경을 헤매는 어린이, 장에 신경절이 없어 대변을 못 보는 어린이 등 소아외과 분야는 수술로 생사가 바뀌는 질병이 많았다. 게다가 수술만 잘되면 여생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다양한 질병을 수술하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대학병원 외과의사는 위면 위, 장이면 장만 수술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소아외과는 온 몸에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을 수술해요.” 그래서 그는 외과전문의 취득 후 소아외과로 전공을 결정했다.

현재 대한소아외과학회 정회원은 전국에 45명이다. 외과 전문의 중 따로 2년 이상 어린이 수술 훈련을 받고 해외 연수 경험도 있어야 하며, 수술 실적도 학회에서 정하는 기준에 맞아야 정회원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소아외과는 기형을 갖고 태어나는 신생아 수술, 미숙아 수술이 각광을 받는다.

“미숙아는 수술실 환경도 인큐베이터처럼 28도에 맞춰 의료진은 비지땀을 흘리면서 수술을 하게 됩니다. 또 1㎏도 안 되는 환자의 장을 절개하고 꿰매야 하는데 실의 굵기는 0.1~0.2㎜로 아주 가늘어요.”(홍 교수) 이 정도 굵기의 실을 익숙하게 사용하기 위해 소아외과 의사들은 평상시 실제 장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실리콘이나 고무로 된 모형을 대상으로 꿰매는 연습을 수시로 한단다.

“몇 년이나 했습니까?”(기자)

“10년 이상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했어요. 지금요? 지금은 연습을 안 해도 감이 있지요.”(홍 교수)

수술을 하다 보면 가슴아픈 사연도 있기 마련이다. 홍 교수는 18개월 때 장이 꼬여 응급실을 찾았던 환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선천적으로 장 회전에 이상이 생겨 장이 꼬인 병인데 방치하면 장이 썩어 사망한다.

초록색의 담즙 섞인 구토, 혈변, 촬영한 복부 X선 검사에서 가스가 꽉 찬 소견이 특징이다.

“이런 환자는 곧 죽을 것 같아도 발견 즉시 응급수술로 꼬인 장을 풀어주면 평생 잘살 수 있어요. 반면 수술 시기를 놓치면 사망합니다.”

홍 교수의 뇌리에 박힌 환자는 장 회전이 불완전해 1년 반 동안 장이 꼬였다 풀렸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급기야 장이 안 풀리는 상황에 처했고, 홍 교수를 찾았을 땐 이미 거의 모든 장이 썩어 있었다. 혹시 하는 기대감에 응급수술을 했지만 환자는 사망했다.

보호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많다. 특히 수술 후 환자가 곧바로 좋아지지 않고 충분히 적응하는 시간이 지난 뒤 정상 생활을 하는 병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장 일부에 신경이 분포되지 않은 ‘선천성 거대결장’이란 병이 있어요. 1차 수술은 배를 통해 대변을 보게 하는 방법을, 6개월 뒤 2차 수술은 문제의 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합니다. 2차 수술 후 대변과 처음 접한 항문의 피부는 처음 한두 달간 짓무르기 마련이에요. 이 기간에 보호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질 것’이라는 담당 의사의 말을 믿고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해요. 믿고 찾은 의사의 말을 자꾸 의심하면 환자도 보호자도, 또 그런 환자를 대하는 의사도 불안만 가중될 뿐이거든요.”

환자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홍 교수는 밤 늦은 응급수술이라도 반드시 병실로 올라가 직접 보호자에게 모든 설명을 다시 한다. 집도의의 기본적인 의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매년 40여 개 질병에 걸린 600명 이상의 환자를 수술하는데 현재까지 집도한 어린이 환자만 8000명이 넘는다.

강성웅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환자·보호자 마음 헤아려 … 하소연 끝까지 들어줘요”

강성웅(사진) 교수와 홍정 교수는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없다. 연배도, 진료과도, 근무하는 병원도 달라서다. 그래도 강 교수는 후학들에게 “환자가 있기에 진료도 있고 수술도 있다. 의사는 환자가 있기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설사 부당한 주장을 하는 환자나 보호자라도 경청하고, 요구사항은 최대한 반영하라”고 가르치는 홍 교수의 신념을 높이 산다.

치료를 한다고 해서, 모든 환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태가 나쁜 환자라도 환자와 보호자는 기적을 바라고 들어오는 곳이 병원이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치료를 받아도, 또 의사가 공들여 치료해도 결과가 나쁘면 환자 입장에선 의사를 원망하기 쉽다. “한번은 병 자체가 모질어 수술을 해도 환자 상태가 나빴던 환자와 보호자가 ‘애당초 포기하라고 그러지 그랬느냐?’고 홍 교수한테 심하게 따졌는데 홍 교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고 해요. 옆에 있던 레지던트가 나중에 ‘위험한 수술이라고 누누이 말했는데도 수술을 부탁했던 사람이 왜 저러느냐’고 하자 홍 교수가 ‘저분은 그간 아이 때문에 고생했고, 지금은 수술 결과가 나쁜데 치료비는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누구라도 붙잡고 화풀이하고 싶은 심정일 텐데 의사가 하소연이라도 들어줘야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환자와 보호자의 아픈 마음까지 읽고 대처하는 홍 교수야말로 참된 명의가 아닐까요?” 강 교수가 홍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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