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할머니’란 잣대로 우릴 가두지 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9호 07면

나이 듦, 두려워하지 마
가장 눈길을 끄는 섹션은 올해 신설된 ‘천 개의 나이 듦’이다. 실버 사회 도래와 함께 뜨거운 화두로 등장한 ‘고령화’ 문제를 다뤘다. 성적 주체로서 노인을 재조명하는가 하면, 노인들의 삶의 현실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열정’은 여성 노인들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면서, 노인을 무성적 존재로 가둬 두려는 데 맞선다.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6일까지 신촌 아트레온

생물학적·사회학적으로 규정되는 연령기인 ‘가임기’를 주제로 한 ‘나는 엄마계의 이단아’는 스스로 싱글맘이 되기로 결정한 재닛 메리웨더 감독이 그 과정을 담은 다큐다. ‘오늘, 외박할 거예요’는 동안 열풍과 성형 열기 등 여성의 몸에 대한 흥미로운 작업이다.

일본영화 ‘오리우매’는 치매 노인에 대한 편견을 비튼다. ‘황무지의 추수기’는 고령 여성에게도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노르웨이판 ‘엄마가 뿔났다’. 평균 연령 72세 여성 농구팀에 대한 다큐 ‘농구 코트 위의 할머니들’, 81세 신인 여성 감독 조경자 감독의 ‘꼬마 사장님과 키다리 조수’는 고령 여성의 파이팅을 보여 주는 영화들이다. 특히 조감독은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77세 되던 2005년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6㎜ 디지털 카메라 촬영법을 배워 영화에 입문했다. 18분짜리 단편이지만 벌써 세 번째 영화다.

세계 여성영화의 흐름
최근 1~2년간 세계 영화계에서 화제가 된 여성영화들은 ‘새로운 물결’ 섹션에서 볼 수 있다. 여성영화의 대모인 아녜스 바르다가 자신의 영화 인생을 정리한 자전적 다큐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을 선보인다. 아직도 현역인 노장 감독의 녹슬지 않은 창작욕이 빛난다. 올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여우주연상을 받은 ‘에브리원 엘스’는 겉으론 완벽해 보이는 커플이 관계의 위기를 맞는 과정을 그린 영화.

페이크 다큐멘터리 ‘보랏’의 촬영지였던 루마니아의 집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카르멘, 보랏을 만나다’와 무슬림 여성의 미인대회 도전기인 ‘미스 아랍’은 민족 공동체와 젊은 여성의 욕망 사이의 갈등을 그린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다. 자본주의 가치가 휩쓸면서 돈 많은 남자에게 선택받는 법을 배우기 위해 몰려든 러시아 젊은 여성들을 스케치한 ‘남자 꼬시기 사관학교’는 최근 우리 사회 풍경과도 무관치 않은 듯. TV 진행자로도 활동했던 여성학자 이숙경의 감독 데뷔작 ‘어떤 개인 날’은 이혼녀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그렸다. 오디션 현장을 통해 아시아 여배우들이 서구 영화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그린 ‘테이크3’도 놓치기 아깝다.

여성주의의 이슈
‘여성노동과 가난’ 섹션에서는 사당동 철거민 가족을 22년 동안 쫓은 다큐 ‘사당동 더하기 22’가 눈길을 끈다. 여성학자 조은이 공동 연출했다. ‘퀴어 레인보우’ 섹션에서는 북미 퀴어 인권운동의 핫 이슈인 동성애자 가족 구성 문제를 다룬 ‘프리헬드’ 등이 선보인다.

10대 소녀가 주인공이거나 직접 감독한 영화들을 모은 ‘걸즈 온 필름’은 앞서 ‘천 개의 나이 듦’, 혹은 아시아 남성 감독들이 10대 소녀들을 그린 일명 ‘교복 3부작’과 비교해 보면 의미가 더욱 깊어질 듯하다.
www.wffis.or.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