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패의 公式 깨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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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34면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지난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돼 줄줄이 우리 앞에 죄인으로 등장한다. 먼저 신문 지상에 특정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러면 그들은 처음엔 하나같이 부인으로 일관하다 며칠 후 검찰의 포토라인에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등장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공무집행 차’를 타고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등장인물만 바뀔 뿐 형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지난 20여년간의 정치 드라마 공식이다.

사람은 자기 안에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권력에 대해 강한 결핍을 느낀 사람들이다. 그들의 결핍은 온갖 역경을 뚫고 권력을 쟁취하는 데 강력한 드라이브가 된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얻게 되면 그 권력을 두려워하기보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온갖 혜택을 누리는 데 쉽게 안주한다. 결핍에서 오는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발 두 발 권력의 달콤함에 자신을 내주기 시작하면 어느새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 돼버리는 것이다. 급기야 권력자는 법 위에 서 있게 되고 이는 곧 정권의 패망을 부른다.

권력자는 자신으로부터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자들의 끊임없는 도전 가운데 서 있다. 권력을 장악한 순간부터 사방에 적들만 보이고 높이 올라갈수록 동지의 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다. 이 불안을 더 공고한 권력과 돈의 추구를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돈이란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장 매력적인 대상이기에 권력을 좇는 사람들과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돈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심지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추구한 돈이 오히려 권력자를 권좌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켜보는 사람으로선 역겨운 드라마이지만, 길게 보면 바른 사회로 가기 위한 진통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하는 부정부패 사건들 자체가 역설적으로 우리 정치의 진보이자 민주주의의 승리를 말해주고 있다. 잘못된 것들이 드러나고 그것이 정죄될 때 개인이건 사회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미국과 같이 로비를 합법화하거나 일본처럼 잘 짜여진 권력의 구조망 속에 비리를 꽁꽁 틀어막고 있다면 속으로부터 곯을 수 있다. 위선이 오래 버틸 수 없는 솔직한 심성을 지닌 한국민은 오히려 도덕적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좋은 품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우리가 아니라 남이 ‘옳지 않게 잘되는 것’을 경계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도덕심 있는 사회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으로 살아남을 확률이 크다고 했다.

이는 그가 전 생애에 걸쳐 미개 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인간 사회를 면밀히 관찰하고 내놓은 결론이다. 도덕심은 인간이 스스로의 행위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순간적인 만족보다 영속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데에서 유래한다. 배고픔이나 성욕과 같은 욕구는 그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반면 부족(部族)을 위해 희생하거나 남을 도와준 행위는 오랫동안 가치 있는 것으로 기억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지속적인 만족을 얻으려면 좁은 이기심에서 탈피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하고, 이런 선택을 하는 구성원이 많은 공동체는 당연히 번성한다. 이러한 자연선택의 표현을 다윈은 도덕심이라 했다.

대의를 우선하는 도덕적 인간을 지도자로 갈망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통해 배울 것이고 정신의 정화 과정을 거쳐 역사는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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