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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더 뮤지컬 어워즈] ‘소극장 창작’부문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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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국 창작 뮤지컬의 미래를 보려면 소극장에 가라. 뚜렷한 실험 정신을 지니고 수년 간의 기획을 거친 ‘탄탄한 물건’들이 무대를 후끈 달구고 있다.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중앙일보·한국뮤지컬협회·국립극장 공동 주최)의 ‘소극장 창작 뮤지컬상’ 후보작 4편은 작지만 알찬 ‘강소(强小) 뮤지컬’의 면면을 보여준다. 단골 메뉴인 로맨틱 코미디를 독특한 아이디어로 다시 요리하는가 하면(‘시간에’·’카페인’) 입맛 까다로운 관객을 겨냥해 엽기와 광기를 특화 메뉴로 차려냈다(‘마이 스케어리 걸’·’사춘기’).

강혜란 기자

마이 스케어리 걸
누구나 공감할 스토리, 한국적 음악으로 승부

‘담금질’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기획 3년 만에 무대에 오르기까지 대본읽기 만 수백 차례 했다. 2007년 대구 국제뮤지컬 페스티벌(DIMF)과 뉴욕 베링턴스테이지컴퍼니 워크샵 등을 통해 골격을 갖춰갔다.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6차례 대본 수정. 올 3월 ‘마이 스케어리 걸’(연출 변정주)의 초연은 뜨겁게 벼려낸 칼날의 매서움을 보여줬다. 원작 영화와 비교되게 마련인 ‘무비컬’의 숙명을 경쾌하게 극복했다. 줄거리나 캐릭터를 크게 바꾸기보다 제한된 세트 속에 4명의 출연진을 효과적으로 엮었다. 충무아트홀 소극장의 반원형 무대를 십분 활용해 마당극 같은 느낌을 살렸다. 미국 작곡가(윌 애런슨)의 음악은 브로드웨이 트렌드에 기반하면서도 한국 정서를 잘 녹인 걸로 평가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가 가지는 콤플렉스를 코믹하게 풀어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

사춘기
감각적 무대, 몽환적 안무 … 소극장 한계 극복

서늘한 충격. 지난해 8월 설치극장 정미소에 오른 뮤지컬 ‘사춘기’(연출 김운기)는 한국 창작 뮤지컬이 잊고 있었던 감정을 건드렸다. 농축된 대사와 감각적인 무대, 몽환적인 안무는 코믹·멜로 일색의 소극장 뮤지컬이 도달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의미’ 있는 작품에 목말라하던 관객은 이 ‘다크(dark) 뮤지컬’의 등장에 환영했다.

원작은 19세기 독일 작가 프랑크 베데켄트의 희곡.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라는 기본 소재를 가져오되 21세기 한국에 맞게 ‘디지털 인간’ 등 현 세태를 담아내 번안했다. 이희준 작가와 김운기 연출이 이 희곡을 뮤지컬화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은 1999년. 수년 간 아이디어로 맴돌던 것을 2006년 연극으로 먼저 번안해 무대에 올렸다. 이 때 공연했던 단국대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지난해 뮤지컬 초연 때 일제히 대학로에 데뷔했다. 오디션을 통해 발탁한 전미도 등 신인들이 이 작품을 통해 ‘샛별’로 주목 받았다.

시간에
인간 심리 절묘한 묘사 … 기발한 소품도 볼거리

독립영화계에 ‘워낭소리’가 있고, 인디음악계에 ‘장기하와 얼굴들’이 있다면, 뮤지컬계엔 ‘시간에’(작·연출 김병화)가 있다. 김병화 연출은 대본을 들고 제작사를 찾던 중 지난해 대구 국제뮤지컬 페스티벌(DIMF) 공모전에 당선됐다. 지원금 4000만원에 어머니가 적금 깨서 마련한 4000만원을 보태고, 전세금 2000만원을 빼서 무대에 올렸다. 배우·스태프들도 무보수로 참여했다. 그렇게 올린 작품이 DIMF 최우수 창작 뮤지컬상을 탔고, 서울에 입성해 성공적으로 공연했다.

‘원하는 시간으로 세 번 돌아갈 수 있는 시계’라는 아이디어가 출발점. 실수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퍼즐 풀 듯 정교하게 재구성했다. 연출가를 포함해 4명의 친구가 전체 컨셉을 공유하면서 17곡을 나눠 작곡했다. 멜로디에 절묘하게 녹아든 에피소드가 다채롭다. 합판으로 만든 와인병 등 제작비 부족을 아이디어로 극복한 소품·무대장치에도 호응이 컸다.

카페인
국내 첫 2인 뮤지컬 … 감각적 연출력 돋보여

‘싱글즈’의 성재준이 쓰고 연출했다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성테일’이라 불릴 정도로 디테일에 강한 성재준 연출이 또한번 도시 남녀의 로맨스를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장면 교체 때 스케치북만한 칠판에 ‘사랑은 카페인이다’ 류의 아포리즘을 새기는 것이나, 작은 무대 안에 카페 안팎을 동시에 보여주는 연출이 돋보인다. 형식 면에선 국내 최초로 시도된 2인 뮤지컬이다. 대신 남자 주인공에게 ‘변장’의 장치를 줘서 3인극 같은 효과를 냈다.

바리스타 여자의 이성을 상징하는 커피와 소믈리에 남자의 감성을 상징하는 와인이 효과적으로 만났다. 뉴욕에서 건너 온 김혜영 작곡가가 보사노바· 라틴·재즈· 왈츠를 넘나드는 음악을 빚어냈다. 특히 서로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탱고’ 장면은 객석의 폭발적 호응을 받았다. 군더더기 없이 빠른 템포로 90여분이 흘러간다. 비트풍 음악이 발라드에 비해 8대2 정도로 많은 것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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