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 아니라도 궁합좋은 와인과 쇠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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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 수많은 주류 가운데 와인만큼 맛의 스펙트럼이 넓은 술도 많지 않을 것이다. 색에 따라 레드·화이트·로제로 구분하며 만드는 방법에 따라 스틸·스파클링·주정강화 와인 으로 부른다.

 또 생산지역·포도품종·빈티지(포도수확연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와인에대해서 잘 안다고 나서기는 웬만한 전문가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느끼면서까지 전문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필요한 만큼 배우고 익히며 즐기면 될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1인당 연간 평균 0.7L 가량의 와인을 마신다. 소비량만으로 비교하면 세계적으로 알코올 소비가 많은 나라라는 표현이 무색할 지경이다. 문화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는 연간 1인당 평균 수십리터를 마시며 일본만 해도 우리나라의 4배이다. 국민소득을 감안해도 우리나라의 와인 소비량은 적은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격의 부담이 한 몫을 한다. 대개 술이란 것이 잡념을 없애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데, 우리나라는 소주와 맥주가 이 역할을 대부분 담당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와인 수입사들과 유통업체들의 경쟁으로 할인점이나 백화점에서 저렴한 와인을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와인이 소주나 맥주처럼 좀더 편하고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래서 <식객>으로 유명한 허영만 화백과 함께 흔히 먹는 한국 음식에 저렴하고 질 좋은 와인의 궁합을 맞추기 위한 ‘와인&안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는 와인과 안주의 마리아주(와인과 음식의 매치)를 프리미엄 칼럼을 통해 소개하려 한다.

 그 첫째가 쇠고기와 와인의 매치였다. 쇠고기는 우리나라사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으로 와인과의 궁합도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쇠고기 부위에 따른 와인 매치는 참 어렵고 우매한 시도였지만 말이다. 물론 기름기 많은 차돌박이와 그렇지 않은 안심부위라면 서로 다른 와인과의 마리아주가 가능할 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안창살, 토시살, 제비추리 등으로 이어지는 소의 특수부위와 개별의 와인을 연결짓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특수부위의 쇠고기 구이와 잘 어울리는 와인을 고민하다 우리는 남아공산 맨빈트너스 카베르네소비뇽을 찾아냈다. 다른 와인도 어울리긴 했지만 가격을 고려하면 단연 맨빈트너스가 발군이었다. 와인의 상큼하고 떫은맛이 쇠고기와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와인과 요리를 함께 맞출 때는 맛의 완성도가 높은 고가보다 오히려 맛의 완성도가 낮은 중저가 와인을 맞추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 각진 와인의 맛을 요리가 부드럽게 해주고 요리가 가진 여분의 맛을 와인이 씻어주어 서로 상생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아마 음양의 이치처럼 와인도 요리가 있어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맨 빈트너스 까베르네 소비뇽(Man Vintners C/S)


남아공 와인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 MAN은 세 명의 와인메이커 아내의 이름인 마리(Marie)와 아네트(Anette), 니키(Nicky)의 첫 글자를 땄다. 대담하고 육감적인 레드와인으로, 스모키한 오크 스파이스와 부드러운 타닌의 맛이 조화를 이룬다. 가격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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