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현대음악은 왜 듣기 싫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8호 07면

2007년 나온 관현악곡이 최근 연주됐습니다. 작곡가는 “아랍 문화에 대한 탐구를 담았다”고 작품을 설명했죠. 그런데 어떻게 된 걸까요? 청중의 귀에는 모기와 파리가 날아다니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첼로ㆍ바이올린 등이 줄을 긁어 대며 ‘끽끽’ 또는 ‘윙윙’하는 음향만 냈으니까요.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기대했다 실망한 청중이 탄식합니다. “쯧, 현대음악이란 역시….”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20세기 이후의 현대음악은 ‘때리고 부수고 긁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미솔’ ‘레파라’ 하는 식의 서로 잘 어울리는 음들의 조합에 익숙했는데, 갑자기 ‘도레미파’를 한꺼번에 눌러 청중의 귀를 괴롭히는 것이 현대음악이라는 거죠.
왜 그럴까요? 우리 시대의 작곡가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능력을 잃어버린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작곡가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기술이 바로 듣기 좋은 음악을 쓰는 법이랍니다. 서로 잘 어울리는 음의 배치를 배우고, 거슬리는 음을 어떻게 해결할지 연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죠.

그러면 왜 이렇게 듣기 싫은 음악을 쓰는 걸까요? 좋은 음악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했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움직이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는 대신 메시지를 담고 새로운 음향을 실험하는 시도가 좋다는 쪽으로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12음 기법으로 ‘조성’이라는 틀을 파괴한 아널드 쇤베르크(1874~1951) 역시 처음에는 꽤 아름다운 음악을 썼습니다. 현악6중주 ‘정화된 밤’을 들어보세요. 현악기 소리가 달콤합니다.

그런데 작곡가들은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왜 음악이 꼭 아름다워야 하지?’ ‘왜 우리는 조성이라는 틀에 갇혀 살지?’ 쇤베르크는 음 사이의 평등을 주장하며 새로운 음계를 고안해냈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런 작곡도 가능하군’ 하는 신세계가 열렸죠.

1910년대에는 ‘소음 제조기’라는 악기까지 나왔습니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불쾌한 소리를 위해 작곡된 작품으로 로마·런던·파리 등에서 음악회를 열었다고 하네요.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좀 더 희한한 시도가 이어집니다. 작곡가는 ‘손을 움츠린 다음 주머니에 넣을 것’(에릭 사티),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를 들을 것’(요코 오노) 등의 지시를 통해 음악과 퍼포먼스 사이의 경계까지 허물죠.

최근 열리는 대부분의 현대음악 연주회는 작품 설명이 부족한 편입니다. 이러한 점만 해결된다면 청중도 현대음악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그러니 현대음악 앞에서 좌절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슴으로 듣던 음악에서 머리로 이해하는 음악으로 유행이 바뀌었을 뿐이니까요. 운이 좋으면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현대음악을 만날 수도 있고, 유행이 돌아 ‘편안한’ 음악의 시대가 다시 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음악 관전의 묘미죠.

A '좋은 음악'의 잣대가 변했어요


중앙일보 문화부의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장을 다니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든 질문이 무식하거나 창피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